‘책의 날’을 돌이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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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날’을 돌이켜보며

<변상형 교수의 문화스펙트럼>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29 11면
  • 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
 지난 23일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었다. 에스파냐의 카탈루냐 지방의 세인트 조지 축일과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죽은 날이 4월 23일이라는 데서 기원하는 ‘세계 책의 날’은 서점에서 장미꽃과 책을 선물하고 여러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독서를 권장하는 날이 되었다. 비록 해외에서 유래한 것이었지만 ‘책의 날’을 보내며 책을 둘러싼 우리의 상황을 새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매년 국가적인 캠페인처럼 독서를 권장하는 계절은 언제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데다 들과 산에는 막바지 꽃들이 피어나고, 단풍이 물들어 가만히 집에 앉아 있기는 힘든 가을이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책을 읽자는 슬로건이 도서관 외에도 각 기관 홍보게시판을 물들이고 독서 감상문을 모집하는 등 그야말로 매년 가을은 누가 뭐래도 독서의 계절이었던 같다. 하지만 이제 새삼스럽게 생각해보면 책 읽는 계절이 따로 있을 수 있을까 싶은데, 무엇이든 국민을 상대로 계몽하고 설득함으로써 문화마저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고자 했던 슬로건 시대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역사이래로 요즘처럼 원하는 책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또 보고 싶은 책을 어렵지 않게 실컷 볼 수 있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만 해도 십여 군데에 이르고, 동마다 가동되고 있는 작은 문고들의 수는 수십 개를 넘어서고 있다. 더욱이 작은 도서관 만들기 운동은 교육적으로 열의에 찬 엄마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도서관운영에 참여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사는 마을에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고 봉사체제로 관리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바야흐로 책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문화가 자생력을 확보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음이다.

그에 따라 도서관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도서관은 마침내 원래 목적대로 시험공부를 하러가는 곳이 아니고 책을 읽으러가는 곳이 된 것이다. 책을 구입하는 경로도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초반 전국규모의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는 대형 보험사가 운영하는 서점이 대전에 들어온다 하여 지역 서점들이 전부 단합하여 반대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지역의 많은 대형서점들이 사라진지도 벌써 오래되었다. 그나마 갖가지 자구책으로 살아남은 몇몇 서점도 옛날에 비해 그 힘과 위용에 있어 빛이 바래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고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사가지고 나오는 즐거움을 더 이상 누리기 힘들게 되었다는데 있다. 새로 나온 책을 살펴보고 목차를 비교하면서 필요한 책을 고르는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은 이제 그리운 추억이 된 것 같다. 책장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을 들여다보니 책마다 무언가 파랗게 또는 빨갛게 찍혀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한권의 책을 고르고 직접 구입할 때마다 서점에서 훈장처럼 찍어주던 인장이다. 그 인장의 기호에 따라 이 책은 어느 서점에서 샀고, 저 책은 어느 책방에서 샀는지가 떠올랐는데 한 권 한 권마다 책에 얽힌 갖가지 사연이 서가를 가득 메운다. 그러나 이제는 누렇게 나이 들어가는 책을 바라다보며 이러다 아른거리는 추억도 몇 번의 클릭으로 회상해보아야 하는 시대가 올려나 싶었다.

세상이 아무리 디지털화되었다 하더라도 책을 통해서 향유하고자하는 것이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세상과의 소통을 가능케 해주는 지혜라고 할 때, 또한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상품을 소비하는 행위만은 아니라고 할 때,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근간은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서점과 도서관이라는 문화적 공간이 살아있을 때 이것이 가능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껴야 하리라. 책의 날을 통해 서점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도,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문화 프로그램도 미래의 우리문화를 키워내는 기초이자 뿌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이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총체라고 한다면, 책을 파는 서점과 책을 모아놓은 도서관은 무엇이라 불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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