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의 또 다른 이름 '조선花'

들국화의 또 다른 이름 '조선花'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24 11면
  • 총칭=맹창호기자총칭=맹창호기자
총칭시 순환고속도로를 따라 남안구 탄즈쓰(彈子石) 판룽(盤龍)입체교차로를 지나다 보면 조그마한 야산이 있다. 화상산으로 불리는 이곳은 주변에 중국인 공동묘지인 투산공묘(塗山公墓)도 눈에 띈다. 산 중턱에 세워진 담배공장의 창고아래는 잡목이 무성한 가운데 언덕을 따라 생활쓰레기가 매립되고 있다.

이곳에는 봄이면 노란색 들국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인근 주민들은 이 꽃을‘조선화(朝鮮花)’로 부르는데 들국화가 이같은 이름으로 불려진 것은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1940년 임시정부가 옮겨진 총칭은 창강(長江)과 자링강(嘉陵江)이 합치는 지역으로 3∼5월을 제외하고는 늘 안개가 피어나고 흐린 날씨를 보였다. 여름이면 섭씨 40도를 넘기는 찜통더위로 중국 3대 가마솥으로 불리지만 겨울이면 습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체감온도가 낮았다. 때문에 폐 또는 혈액순환 관련 질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도 총칭에 훠궈(火鍋)로 불리는 요리가 유명한 것은 고추의 매우 맛으로 혈액순환을 빠르게 하려는 생활의 지혜다.

기후가 이렇다 보니 자연 고령의 임정요인은 물론 많은 애국지사들이 쓰러졌다. 김구의 어머니인 곽낙원여사도 장남 김인도, 국무위원 차리석 선생도 병마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했다.


그런데 임시정부에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일생을 고국광복을 위해 살아간 이들의 장례를 성대히 치뤄야 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했다. 꽃상여는 만들기는 비용문제가 걸렸다. 생각다 못한 임정요인들은 장례에 참여해 간소한 입관식과 함께 영혼을 위로하는 뜻에서 꽃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200여 명에 달하는 애국지사와 한인이 화상산 한인묘지에 묻이면서 주변은 들국화로 뒤덮였다. 현지 중국인들은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국 땅에 묻힌 한인의 영혼처럼 애처럽게 피고지는 꽃이란 뜻에서 이를‘조선화’또는‘조선초’라는 이름을 붙였다.

총칭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이선자 부관장은“1960년대 중국의 대기근때 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이 꽃을 꺾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아예 조선화로 불리게 됐다”며“4월이면 화산상 한인묘지 인근에는 애국지사들의 아픈 사연을 담은 조선화가 피어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인묘지는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에 의해 비석이 모두 파괴되면서 주인을 알아볼 수 없게 됐다. 현재는 돌더미와 잡목이 뒤엉켜 있는데다 이마저도 비탈이 심해 빗물에 씻기고 인근 공장의 폐수까지 흘러 무덤인지 조차 알 수 없는 형편이다.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개발되면서 언덕을 따라 생활쓰레기 처리장이 생기고 언덕 아래 평지는 사토장으로 사용되면서 일반인의 접근조차 어려워졌다. 들개만이 쓰레기더미를 뒤져 버려진 음식을 먹느라 이곳을 어슬렁거린다.

이 부관장은“화상산 한인묘지에는 200여명의 애국지사와 한인동포들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200여m 구간에 집중된 이들의 묘지를 발굴하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쓰는 기간 내내 오늘날 대한민국이 임시정부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을지 자문해 봤다. 화상산 한인묘지는 이같은 수식어가 정치선전의 잔꾀라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올해도 쓰레기에 덮여가는 이곳에 조선화는 피어나고 있다. 조국은 광복된지 60여년을 넘겼지만 이곳에 묻힌 애국선열들은 지금도 애처러운 조선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총칭=맹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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