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뜻대로 되기도 어렵고 그러한 선생님을 찾기도 너무 힘든 일인 것 같다. 우리는 성장과정에서 여러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선생님을 선택할 수가 없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의지적으로 선택한다고 해서 잘 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좋은 선생님은 하늘이 맺어준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 윤율로 연합피부비뇨기과 원장 |
자살도 시도하였으나 바아바라 목사님을 만난 후 신앙을 같게 되었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후 맹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고 개안수술도 받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정신병원의 나이든 간호사의 사랑어린 보살핌이나 바아바라 목사님과 같은 훌륭한 인생의 선생님이 없었다면 설리번도 헬렌 켈러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선생님은 제자가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인 인물로 돌출되어진 후에서야 이면에서 드러나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선생님들이 주위에 없었거나 본인의 노력이나 의지가 서로 조화되지 못했다면 좋은 결과는 또한 없었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들에게 훌륭한 선생님은 무엇을 뜻하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그 의미가 혼동되기도 한다.
우리가 만나는 선생님 가운데는 학교선생님이나 특기를 가르치시는 선생님 또한 종교나 인격을 성장시키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선생님도 계시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선생님은 당연히 치맛바람 밑에서 등장한 쪽 집게 선생님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사고방식이나 인격의 형성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인다는 인상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며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는 덕목 있는 개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지식보다는 지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요즈음 흔히 이야기 되는 멘토링(mentoring)도 이러한 측면에서 대두되지 않는가 싶다. 멘토(mentor)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겠지만, 멘토란 그리스신화에서 나온 용어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텔레마코스를 절친한 친구인 멘토르에게 맡겼으며 그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로서, 선생님으로서, 조언자로서 또한 친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잘 도와주었다고 한다.
나의 학창시절에도 멘토인 선생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인격과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본보기가 되셨던 분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내 모습이 그대로 비추어져서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도 성장해서 대학에서 일하던 교수시절에는 나의 제자들에게 그렇게 되고 싶었고 최소한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멘토 이상의 의미가 있지만 크리스천에게는 예수님이 멘토이며 불가에선 부처님이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취미로 성악을 공부해왔었다. 취미도 어느 정도는 프로에 가깝게 해야 된다는 나의 지론 때문에 여러 선생님을 만나 열심히 공부해왔다.
선생님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그 것을 교정하는 것은 처음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도 늦게나마 깨닫는 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서도 바라보고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멘토가 절실하다. 학교에서도 성적만으로는 인격자를 키울 수 없고 기업도 이익만을 바라보아서는 제대로 된 기업은 이룩할 수 없다. 카네기나 빌 게이츠의 생각이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이들도 경제적인 부 만을 위해 인생을 소모했다면 잠깐 스쳐 지나치는 인생에 불과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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