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자라는 화초들을 볼라치면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는 한편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어 더없이 흥미롭다. 유심히 보니 최근의 경향은 한 화분에 여러 종류의 식물을 같이 심는 게 유행인가 보다. 마치 바위틈에 자라는 식물처럼 두툼한 숯에 풍란을 올리고 산호수와 고사리를 끼워 멋을 낸 화분도 있다. 하긴 우리네가 사는 사회도 열린 세상이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으니 시대의 흐름은 어디에나 영향을 미치는가 보다.
기와에 흙을 담고 영산홍, 로즈마리, 땅채송화, 돌단풍을 함께 심어 작은 화단처럼 보이는 화분에서는 필자의 예상과 영 다른 일이 벌어졌다. 튼튼한 영산홍이 죽고 약하게만 생각했던 허브, 로즈마리가 거의 작은 관목처럼 무성하게 자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기왓장에 담긴 흙은 영산홍에는 부족했고 로즈마리에게는 충분했나 보다. 이 현상을 보면서 개체의 강인성보다는 환경과의 적합성이 생존에 더 절대적임을 절감한다. 새삼 손으로 한 번 쓰다듬어 향내를 맡으면서 자기에게 맞는 환경에 안착한 로즈마리의 행복을 부럽게 바라본다.
끊임없이 꽃을 피워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꽃기린부터 잠시 쉬는 바이올렛, 토종 붓꽃 난으로 흐르던 시선은 산호수에 머문다. 산호수라는 이름은 산호처럼 예쁜 열매를 가졌다 하여 붙여졌다는데 그래 그런지 사회복지기금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처음에는 호접란과 함께 심어져 있다가 혼자 남은 후 그늘에서도 화분 가득 왕성하게 자라는 게 기특해 자료를 찾아보니 천량금, 만량금과 함께 키우기 좋은 식물로 나와있다. 분간을 하지 못해 그렇지 이미 연구실에는 천량금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발견되었을 때 신문에 보도되었을 정도라 하니 그 기쁨이 커서 천량금이라 했나보다. 그리고 천량금보다 잎도 더 두껍고 튼실한 백량금도 있는데 꽃가게에서는 만량금이라 하며 판다고 한다.
화초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물과 빛과 공기를 적당히 맞추어주어야 한다. 흔히 햇빛과 물은 곧잘 맞추지만, 공기 역시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방학에 며칠 휴가를 다녀오면 화초들이 왜 시들시들해지는지. 그러나 창문을 좀 열어두고 주말을 지내고 와보니 화초들이 잘 있었다. 경험적으로 이것을 깨우친 후 매우 기뻤는데 원예 책을 보니 다 쓰여 있었다. 아무튼, 생명체가 살아가는 원리는 비슷하다는 것을 깊이 느꼈고 이제는 사람에게 하듯이 하면서 잘 가꾸고 있다.
오래도록 물을 주지 못해 바짝 마른 화분에 물을 주어보았는가? 이미 흙이 단단해져서 물을 주어도 흡수되지 않고 그대로 흘러버리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을 상하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려고 할 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고 저항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씩 다가가 우선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어야 한다. 화분의 굳은 흙에 스프레이로 물을 주어 적신 후, 부드러워졌을 때 물을 주어야 흠뻑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의 메타포라고나 할까.
그러니 이 식물들을 천량금이니 만량금으로 부를만하다. 꽃의 성장을 보며 개인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공인 정신간호에 필요한 지혜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금빛 마음을 키우고 가꾸자. 따스한 햇볕 같은 온정으로, 각각에 맞는 수분의 적절성으로, 그리고 삽상한 공기, 소통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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