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대전지방변호사회장 |
인류의 탄생과 더불어 법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인류와 함께 한 법이 친구처럼 또는 자상한 이웃아저씨처럼 여겨진 시절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인류가 행복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시작한 것이 분명하며 지금도 여전히 법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사이좋게 나누어 먹으라고 식탁위에 놓은 과자를 가지고 두 아이가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체격이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싸움이었는데 당연히 체격이 큰 아이가 힘이 좋아 작은 아이를 억누르고 책상위에 놓인 과자를 모두 차지해 버렸다. 그런데 곧 바로 이웃집 아저씨가 나타나 체격이 큰 아이에게 다가가 타이르면서 울고 있는 작은 아이에게도 차지한 과자의 일부를 나누어 주라고 한다. 그러나 큰 아이가 이를 거절하자 이웃집 아저씨는 엄한 얼굴을 하면서 과자의 일부를 빼앗아 작은아이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이것이 정의이며 법이 존재하는 이유인 것이다. 인간관계가 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면 인간은 누구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인류는 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힘이 아닌 인간들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법을 만들고 이를 지키도록 할 때에 인간은 그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자유를 통하여 인간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법이 존재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법도 단순히 인간에게 자유를 주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형식적인 자유만을 주고 방치하였으나 곧 이어 ‘네 마음대로 해라’는 식의 자유만으로는 진정한 자유가 아님을 알게 되고 인간의 자유란 바로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자유, 즉 기본적인 경제적 생활의 충족이 없이는 자유란 공허한 것임을 깨닫게 되어 이제는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인상 좋고 자상한 이웃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법은 회초리를 든 선생님의 모습만이 아니라 인심 좋은 이웃 아저씨의 얼굴도 갖게 된 것이다.
질서는 아름답다는 표어가 있다. 법도 같은 의미에서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으로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법과 질서 안에서 자유를 누릴 때에만 편안함과 행복함을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질서를 지키지 않다는 것, 즉 법을 지키지는 않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연히 불안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고 긴장하게 하고 어느 때에 수사관이 들이닥쳐 자신을 잡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자유를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 아닌가? 그런데 이처럼 당연한 말을 다시 반복해서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의 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법을 이처럼 회초리 든 선생님의 모습만이 아닌 자상한 이웃집 아저씨 모습으로도 보았으면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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