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휘두르며 사는 용역깡패 상훈. 시위대든 채무자든 닥치는 대로 까부수는 더러운 성격은 용역회사 사장인 만식도 어쩌지 못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여동생과 어머니를 잃고도 폭력을 ‘대물림’하고 살아간다. 그런 그가 앙칼진 여고생 연희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연희와 함께 시장을 누비는 모습은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적인 내일을 예상하게 한다. 상훈에게 과연 봄은 올까.
한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폭력의 근원을 선명한 핏빛으로 그려낸 이 거친 영화에 세계인들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뭘까. 도빌아시안국제영화제는 “인간의 모든 문제가 집약된 것 같은 강한 영화”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양익준은 공주영상대학에서 연기를 배운 배우다. 그가, “생각만 하는 것은 물 위에 글을 쓰는 것이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돌 위에 새기는 것”이라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말에 자극을 받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화제 만발의 단편영화를 만들던 그가 장편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들을 했다. 하지만 촬영 중 들려오는 소식은 좋지 않았다. 전셋집을 팔았다고 했다. 그가 마침내 걸출한 데뷔작을 들고 해외를 돌아 우리에게 왔다.
“‘똥파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거칠고 불쾌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 ‘똥파리’들 역시 울고 웃으며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지만 세상에서 내몰려 삭막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곤 한다. 그런 삶에 ‘똥파리’들은 진짜 숨이 꽉꽉 막히며 숨조차 쉬기 힘들어 한다.(영어 제목이 ‘숨 쉴 수 없는(Breathless)’인 이유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숨이 막힌다. 위악(僞惡)으로 가득 찬 주인공 상훈의 악다구니 같은 일상은 거칠고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상훈은 입만 열면 욕설이다. 대화법은 주먹질이다. 발차기가 아니라 발길질이다. 우악스런 그의 폭력은 핏줄인 아버지에게도 퍼부어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귀를 씻고 싶은 욕설에 웃음이 터지고 무자비한 폭력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건.
‘씨발 놈아’하는 욕이 ‘왜 내 맘 몰라 주냐’는 안타까움으로 들릴 때 연민이 되고, 저 악다구니 같은 삶이 바로 우리네 삶이구나 하고 인정할 때 가슴이 열린다.
‘똥파리’의 미덕은 진정성이다.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표현들로 넘쳐난다. 욕설도 영화를 위해 양식화한 것이 아니라 실제 동네 양아치가 내뱉는 듯 생생한 느낌이다.
카메라도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누구도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한 리얼하고 참혹한 풍경을 선명한 핏빛으로 담아낸다. 어떤 은유나 상징 같은 기교도 부리지 않는 영화는 그래서 더 진심이 가진 힘을 지녔다.
영화는 클로즈업과 꽉 짜인 카메라 앵글을 통해 우리에게 이게 현실이다, 눈 똑바로 뜨고 일상적인 폭력을 정면으로 바라보라고 들이댄다.
숨통을 꽉꽉 조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관객의 가슴을 쥐었다 놓았다하는 리듬이 기가 막힌데, 이 아주 ‘쎈’ 영화를 숨 쉬게 하면서 관객들이 받아들이게 가슴을 열어놓는다.
상훈이 그토록 무시하던 ‘고삐리’ 연희의 무릎을 베고 울음을 터뜨리는 건 스스로 선택한 ‘나쁜 남자’의 삶이 너무너무 외롭다는 걸, 인간이 아무리 강한들, 센 척한다한들, 혼자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거칠고, 심장의 박동으로 말을 거는 이 영화를 두고 양 감독은 “내 안의 분노와 아픔을 푸는 살풀이 한번 제대로 했다”고 말했다.
4월 한 달, 단 한 편만 영화를 보겠다고 작정했다면 꼭 ‘똥파리’를 보시라 권해드린다. 감히 올해 최고의 데뷔작이 될 거라 자신한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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