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의 정조가 워낙 가득한 나라인지라 그렇다 치더라도, 분통터지는 일은 따로 있다. 사랑하던 여자가 김양인지 김양이 많아서였는지, 미군정 시절 미국인 미더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취한 이 꽃은 필자 중학생 무렵 비싼 로열티를 치르고 보얀 미국 아가씨가 되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됐다. 수수꽃다리라는 고운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이건 전설이 아니다. 우리 꽃인데 우리 꽃 아니라니, ‘미스킴‘ 이 여자를 볼 때마다 묘한 딜레마에 빠진다. 환향녀(還鄕女)라 했던가. 뒤에 ‘화냥년’으로 화했다던가. 그게 아니고, 음탕한 계집이라는 만주어 ‘하얀’에서 왔다던가. 어쨌거나 병자·정묘 난리 통에 되놈들 전리품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조선 누이들을 보는 심경이다.
나무 중 구상나무도 온전히 한국 특산수종이었다. 영국 식물학자 윌슨이 가져가서 신종 등록한 후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해마다 명성을 드날린다. 88올림픽 전후해서 홍도에서 반출된 비비추는 잉거비비추라는 신품종으로 올랐다. 잉거는 해외 반출자 이름이다. 우리 고유 생물을 못 지킨 업보라 할 것이다.
우리 것을 우리가 한사코 밀어내는 경우도 있다. 벚꽃 하면 일제 찌거기라는 굴레를 씌우는데,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란 사실은 DNA 분석에서도 입증됐다. 꽃에 과민한 정치색, 과도한 민족주의 옷을 입히는 것에 반대한다.
흥분을 갈앉히고 보니 꽃 소식으로 사방이 술렁인다. 다음주면 안면도국제꽃박람회(4.24∼5.20)의 막이 오른다. 기름냄새 떨쳐내고 꽃향기 진동하니 고맙고 정말로 조상의 선견지명인지 ‘꽃지’ 등 일원에 꽃천지가 열려 그도 경이롭다. 1억 송이 꽃 중 하늘매발톱, 구름국화, 각시투구꽃, 설앵초, 섬장대 등 희귀한 자생식물들까지 선보여 더욱더 반갑다.
모든 꽃은 아름답다. 작은 쟁반만 한 호박꽃이건 보일락말락한 쇠별꽃이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 속성을 ‘꽃’이라 부른다. 편하게, 향기롭게 꽃을 완상하면서도 억울한 미스킴라일락을 위해서라도 생물자원과 생물주권까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안면도에선 꽃은 반개(半開), 복은 반복(半福)이 좋음을 덤으로 터득하게 되길!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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