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며느리배꼽과 미스킴라일락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며느리배꼽과 미스킴라일락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16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며느리밥풀, 며느리주머니, 며느리배꼽, 며느리발톱…. 딸도 아들도 아니고 ‘며느리’다. 잎 앞면이 배꼽처럼 옴팡하다 해서 며느리배꼽. 못생긴 배꼽이다. ‘며느리밑씻개’란 이름은 불미하다. 급한 볼일 보던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뒤 닦을 것 달라 청했더니 이걸 뜯어줬단다.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생김새에 주목해보면 며느리밑씻개에는 잎이 각지고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잔뜩 달려 있다. 또 며느리밥풀은 밥 뜸이 잘 들었나 살피던 며느리가 이를 오해한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넋이 서린 꽃이다. 며느리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고부간’이란 말에 유념하면서 생김생김을 뜯어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한(恨)의 정조가 워낙 가득한 나라인지라 그렇다 치더라도, 분통터지는 일은 따로 있다. 사랑하던 여자가 김양인지 김양이 많아서였는지, 미군정 시절 미국인 미더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채취한 이 꽃은 필자 중학생 무렵 비싼 로열티를 치르고 보얀 미국 아가씨가 되어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됐다. 수수꽃다리라는 고운 이름은 서서히 잊혀졌다.

이건 전설이 아니다. 우리 꽃인데 우리 꽃 아니라니, ‘미스킴‘ 이 여자를 볼 때마다 묘한 딜레마에 빠진다. 환향녀(還鄕女)라 했던가. 뒤에 ‘화냥년’으로 화했다던가. 그게 아니고, 음탕한 계집이라는 만주어 ‘하얀’에서 왔다던가. 어쨌거나 병자·정묘 난리 통에 되놈들 전리품으로 끌려갔다 돌아온 조선 누이들을 보는 심경이다.

대표적인 기찻길 풀꽃인 망초에도 아픈 민족사가 담겨 있다. 알다시피 일본이 한반도에 이어 대륙을 집어삼키려고 우리 땅에 철도를 놓았다. 그때 미국에서 수입한 침목에 망초 씨앗이 묻어 와 레일 깔린 곳을 따라 전국에 불길처럼 번졌다. DJ정부 시절 경의선 주변에 무궁화 심자, 목란 심자, 법석이던 일이 새삼 떠오른다. 역시 전설 아니다.

나무 중 구상나무도 온전히 한국 특산수종이었다. 영국 식물학자 윌슨이 가져가서 신종 등록한 후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해마다 명성을 드날린다. 88올림픽 전후해서 홍도에서 반출된 비비추는 잉거비비추라는 신품종으로 올랐다. 잉거는 해외 반출자 이름이다. 우리 고유 생물을 못 지킨 업보라 할 것이다.

우리 것을 우리가 한사코 밀어내는 경우도 있다. 벚꽃 하면 일제 찌거기라는 굴레를 씌우는데,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란 사실은 DNA 분석에서도 입증됐다. 꽃에 과민한 정치색, 과도한 민족주의 옷을 입히는 것에 반대한다.

흥분을 갈앉히고 보니 꽃 소식으로 사방이 술렁인다. 다음주면 안면도국제꽃박람회(4.24∼5.20)의 막이 오른다. 기름냄새 떨쳐내고 꽃향기 진동하니 고맙고 정말로 조상의 선견지명인지 ‘꽃지’ 등 일원에 꽃천지가 열려 그도 경이롭다. 1억 송이 꽃 중 하늘매발톱, 구름국화, 각시투구꽃, 설앵초, 섬장대 등 희귀한 자생식물들까지 선보여 더욱더 반갑다.

모든 꽃은 아름답다. 작은 쟁반만 한 호박꽃이건 보일락말락한 쇠별꽃이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공통 속성을 ‘꽃’이라 부른다. 편하게, 향기롭게 꽃을 완상하면서도 억울한 미스킴라일락을 위해서라도 생물자원과 생물주권까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또한 안면도에선 꽃은 반개(半開), 복은 반복(半福)이 좋음을 덤으로 터득하게 되길!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