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경]호박 같은 사람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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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경]호박 같은 사람들의 세상

[수요광장]김용경 건양대학교 기업정보관리학과 교수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15 21면
  • 김용경 건양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김용경 건양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호박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식생활에 중요하게 사용되어 온 대표적인 채소다. 호박은 봄에 씨를 심어 싹이 나고 한 번 자라기 시작하면 여름을 지나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까지 꾸준히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는 매우 성실하고 충직한 식물이다.

그럼에도, 호박에 대한 이미지는 소박한 외모 때문에 좋은 쪽보다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더 많이 비유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 김용경 건양대학교 기업정보관리학과 교수
▲ 김용경 건양대학교 기업정보관리학과 교수
‘호박처럼 못생겼다’, ‘호박꽃도 꽃이냐’,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 등 호박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이 아무리 많다 해도 나는 호박을 좋아한다.

내가 호박을 좋아한다는 것은 음식으로는 물론 성장과정을 포함한 식물 그 자체를 좋아한다는 의미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시골집 텃밭에 호박을 심어 기르며 그의 매력에 깊은 호감과 정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호박은 태어나는 자리를 가리고 탓하지 않는다. 시골집 토담 밑도 좋고, 비탈진 언덕도 좋으며, 허물어져 가는 뒷간 옆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호박은 자기가 태어난 처지를 탓하지 않고 주어진 자리와 환경에서 온 힘을 기울여 성실하게 일생을 살아간다.

호박은 평생 건강하고 튼튼하다. 대도시 공원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과보호 속에 자라는 화초와는 달리, 호박은 시골에서 태어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커가는 아이들처럼 아주 건강하고 튼튼하다.

심을 때 걸쭉한 분뇨나 퇴비를 듬뿍 주고 나면 한평생 밥투정 반찬투정 없이 약 한번 먹지 않고 잘 자란다.

호박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다. 수박은 겉과 달리 속이 빨간데 그나마 잘 드러내지 않아 남을 속이기 일쑤다. 그러나 호박은 겉을 보면 바로 속을 알 수 있다.

겉이 푸르면 속도 푸르고 겉이 늙어 누레지면 호박 속도 같이 노랗게 변한다. 이렇듯 호박은 거짓이 없으며 거기에 언제나 믿음이 간다.

호박은 일평생 버릴 게 없고 희생적이다. 어릴 적 애호박은 나물이나 부침개로 애용되지만, 늙어서는 호박떡이나 호박죽 또는 약재로도 사용되어 그 가치와 용도가 더욱 다양해진다.

또한, 호박잎은 구수한 된장국으로, 호박씨는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도 요긴하게 이용되며, 심지어 늦가을 호박 덩굴은 황소의 보양식으로까지 훌륭하게 사용되니, 호박은 평생을 버릴게 없이 남을 위해 희생적이다.

호박꽃은 품위가 있고 정숙하며 후덕하다. 호박꽃은 그 자태가 듬직하고 색상이 은근하여 품위가 있으며, 철든 남녀가 조심스레 행동하듯 암수가 구분되어 정숙하게 처신한다.

그래서 호박꽃은 바람에 함부로 몸을 맡기지 않고, ‘벌’이라는 중매인을 통해서만 조용히 혼인을 한다.

또한, 그 심성은 종갓집 맏며느리처럼 넉넉하고 후덕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언제나 풍성한 양식(꿀)을 아낌없이 먹여주고 나누어 준다.

호박은 나이가 들어가며 그 속을 비운다. 사람이 속을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산다는 의미일 텐데, 죽을 때까지 권력, 명예, 재산욕심을 가득 채우고 무거워 고생하다 가는 이가 얼마나 많다던가!

그러나 호박은 늙을수록 속을 비워 가벼이 하며, 그 속에는 수양 깊은 고승의 사리처럼 단단하게 영근 씨 몇 개만을 남겨놓는다.

호박을 무심코 비하하거나 함부로 비교하지 말자. 호박은 외모가 화려하지는 않으나, 여름 한 철 밀물처럼 등장했다가 썰물처럼 사라지는 여느 과일이나 채소와는 사뭇 다르다.

주어진 처지에 불만하지 않고 일평생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품위를 지켜 정숙하고 후덕하게 행동하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욕심 없이 돌아가는 호박을 그래서 나는 좋아한다. 호박 같은 사람들의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며, 올해도 호박 몇 포기를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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