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형]건강한 기증문화 갈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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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형]건강한 기증문화 갈길 멀다

<문화스펙트럼>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15 10면
  • 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변상형 한남대 예술문화학과 교수
지난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기증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계기로 일어난 장기기증운동의 확산은 그동안 우리문화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기증에 대한 현실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말이 쉬워 기증이지 자신의 장기를 사후에 남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준다는 결정이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사회적으로 공익에 이로움을 줄 것은 분명하나 기증자의 결단이 필요한 다양한 차원의 뜻있는 기증이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분야 역시 많다.

요즈음 도서관에 가보면 한 편에 개인의 이름이 붙어 있는 서가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미 도서기증이라는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자손대대 가보로 내려 온 고서들이나 자신의 손때 묻은 애장서 역시 개인이나 한 집안의 재산으로 가두어 놓기보다는 후학들에게 연구 자료로 선뜻 내놓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또 각종 박물관 전시장에는 안방의 장롱 깊숙이 오랜 세월 감추어 왔던 소중한 유물이 기증된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전시유물 앞에 놓인 설명에는 누가, 언제, 무엇을 기증했는지를 기술해 놓음으로써 기증자들에게 자긍심을 주고 있다.

사회적 공익을 위해 기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만큼 기증받는 기관에서는 여러 기증물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나서기도 한다. 기증관 설치나 기증유물특별전의 전시 등으로 개인이 소장하고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나은 관리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기증자로 하여금 기꺼이 기증하도록 체계적으로 기증품을 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기증 기관 또한 공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근래에는 공공기관에 미술품을 기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술작품을 공공미술관에 기증함으로써 어느 개인의 소유물이기에 앞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여야 할 공공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소중한 근현대 미술작품들이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공공 미술기관에 속속 기증됨으로써 많은 미술 애호인들에게 귀한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의 소유물에서 공공의 재화가 된 각종 미술품들을 위해 미술관에는 기증자의 이름을 빌려 독립된 소장실을 두거나 아예 기증자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의 형태로 시나 도에서 세금으로 공공미술관을 지어주는 경우도 늘어났다.

이렇게 우리사회에 기증문화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증의 문화적, 질적 수준에서 보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많다. 특히 미술계의 경우, 어느 미술관이든 소장품들을 자체예산만으로 구입하는 곳은 드물고 상당부분 기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기증받는 측과 기증하는 측 양쪽에 있어서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오기 마련이다.

기증하는 측에서 본다면 공공기관이 개인보다 더 잘 관리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증하는 것일 텐데, 기증받은 측에서 적은 예산이나 인력부족으로 관리운영에 있어 미흡한 측면을 보여주거나 연구와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기증확보는 어렵게 된다. 또한 기증받는 기관에서 볼 때도 어느 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기증받을 것을 작가 또는 유족과 합의했다 해도 정작 기증받은 작품들 가운데 그 작가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 없을 때 기증의 선의는 흐려지기 마련이다.

한두 대표작을 선심 쓰듯이 끼워주고 그야말로 습작품 같은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기증이 이루어지는데다, 기증자를 믿고 막대한 세금을 들여 미술관까지 건립했는데 정작 기증은 가뭄에 콩 나듯 이루어진다면 기증자의 의도가 애초에 무엇이었는지도 의심받을 수 있다. 마치 무슨 비밀 협상이나 되는 것처럼 유족과 힘든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상황도 불합리하다 할 것인데 기증품이 적어 전시를 한번 열면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기증받은 작품을 중심으로 활발한 미술사적 연구와 교육사업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기증작 확보라는 기본조건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이에 무리가 따를 것은 뻔하다. 이렇게 기증기관을 상대로 시소 게임하듯 줄다리기를 하는 기증자의 마음을 시민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증을 받는 측 입장도 기증자의 처분과 행동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말고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할 것이다. 지역미술관의 한 사례를 놓고 볼 때 건강한 기증문화가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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