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교장 선생님이 못 되셨슈?
- 우이 씨. 세월이 가면 자동빵으로 되는 줄 알았겠지.
▲ 강병철 공주공고 교사 |
그랬다. 그런 흑백사진의 세월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내, 루카치의 ‘별을 보던 마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쓰다듬자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서늘한 사연 있었다. 스물 몇 해 전 꽃봉오리 여고생들 앞에서 수줍게 분필 잡던 그 시대 총각선생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싸-하다. 기쁨과 슬픔이 시계추처럼 오고갔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자본주의는 불안을 먹으면서 약진했고 승용차와 핸드폰과 인터넷으로 꽉 찬 지구촌 시대가 되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미루나무처럼 쭉쭉 커서 노동자가 되고 관료나 경찰이 되고 더러는 식당 주인이나 선생이 되어 오가는 길목에서 하얀 이빨로 마주치기도 한다. 마찬가지였다. 동지나 구경꾼의 갈림길에서 논쟁하던 예전의 벗들은 관료나 사업가나 실직자가 되어 웰빙식단이나 잔치국수나 따로국밥으로 장년의 건강을 챙기는 중이다.
그리고 그 사내는 여전히 평교사로 남아 칠판을 두드린다. 이빨 사이가 떠서 출석부로 가리며 웃기도 하고 더러는 게시판에 못질하다가 허리가 아파 잠깐 숨을 고른다. 독수리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그니의 머리칼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듬성듬성 속알머리도 보인다.
이번에는 소도시 터미널이다. 귀가길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또 아이들이 몰려온다. 꽃샘바람에 어깨를 움츠리던 단발머리 소녀들 오그르르 몰려와 꾸벅 고개 숙인다.
- 차없슈? 마누라한테 빼앗겼나?
- 다른 선생님한테 태워달라고 부탁하시징. 혹시 왕따?
전봇대 뒤로 숨으려던 장년의 평교사는 자르르 쏟아지는 머리칼 빛깔에 잠깐 황홀감에 젖는다.
- 얘들아, 공부해서 남 주자.
사춘기 머리칼 쓰다듬으며 짐짓 시치미 떼는 중이다. 재래시장 골목마다 모종좌판이 쪼르르 늘어서서 채마밭으로 데려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장년의 평교사, 아파트 공터에 오이넝쿨 얹을 궁리로 몰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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