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불시착한 ‘엉뚱녀’들의 사랑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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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불시착한 ‘엉뚱녀’들의 사랑찾기

한국 ‘엉뚱’ vs 미국 ‘몸개그’ 대결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10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4월의 날씨만큼 종잡을 수 없는 여자들이 왔다. 둘 다 목마르고(하나는 사랑에, 다른 하나는 승진에 목마르다), 목을 축이려 엉뚱한 곳에 들어와 ‘삽질’을 해대는 ‘엉뚱녀’다.

엉뚱녀를 연기하는 배우도 하나는 충무로산이고 하나는 할리우드산이지만 둘 다 연기파이고 사랑스럽다. 강혜정과 르네 젤위거. 이 엉뚱녀들이 방문에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왜 왔니. 너.” 우리 영화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직설적으로 왜 왔느냐고 묻고, ‘미쓰 루시힐’은 “너~”하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묻는다.
 
■ 우리 집에 왜 왔니
 감독: 황수아. 출연: 강혜정 박희순 이승현

<줄거리>
 숱하게 자살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병희. 이번에는 정말 죽겠구나 싶었는데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한 여자가 당당하게 들어선다. 마당에 꼭 묻어야 할 놈이 있으니 조용히 지낼 것을 강요하는 수상한 여자, 수강. 병희를 꽁꽁 묶어 놓고는 수강은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오페라글라스로 창밖의 누군가의 집을 감시한다. 도대체 그녀는 뭘 하는 걸까.
 
 ‘올드보이’의 미도,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 ‘연애의 목적’의 미술교생 홍, ‘허브’의 차상은 등등. 어떤 역할이든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색칠하며 개성 있는 연기파 배우로 사랑받는 강혜정이 또 다른 파격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강혜정이 연기하는 수상한 여자, 이수강은 외모부터 남다르다. 고약한 냄새가 스멀거리는 헤어스타일에 패션은 자유분방한 빈티지 레이어드룩. 쉽게 말해 노숙자다. 여기에 생면부지 남의 집에 “다녀왔습니다” 한마디만 던지고 자신의 집인 양 들어서는 당당함과 남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는 뻔뻔함까지.

 사고방식도 사랑방식도 남다르다. 사랑 때문에 전과 3범이 됐고, 남의 집에 눌러앉고선 창밖으로 누군가의 집을 감시하는 수강은 보면 볼수록 궁금증을 더하는 중독성 강한 매력을 지녔다. 수상하기 그지없지만 오직 사랑을 향한 몸부림이기에 수상쩍음이 되레 매력을 배가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건 기적”이라는 수강의 대사, 감금한 사람과 감금당한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과 상식을 파괴하는 행동, 예측불허의 해프닝 등이 신선한 재미와 유쾌함을 선사한다. 강혜정과 박희순, 두 연기파 배우의 화학작용과 오랜만에 찾아온 참신한 코미디라는 점이 영화의 강점.

 수강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병희는 삶의 기운을 되찾는다. 하지만 영화는 수강의 사연을 털어놓은 뒤 두 남녀가 연대에서 연정으로 나아가는 예정된 수순을 밟으며 기운을 잃는다.

 단편영화에서 섬세한 심리묘사와 세련된 영상미를 선보였던 황수아 감독은 예의 솜씨를 발휘한다. 배우들의 떨리는 숨소리, 작은 손동작까지 포착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러면서 소통이 단절된 현대인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숨겨진 행복을 발견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때론 감동적으로 건져낸다. 황 감독은 이 미스터리 멜로를 ‘외로운 영화’라고 소개했다.


■ 미쓰 루시힐
 감독: 조나스 엘머. 출연: 르네 젤위거, 해리 코닉 주니어

<줄거리>
승진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루시. 모두가 꺼려하는 한 공장의 자동화와 구조조정이란 업무도 오케이다. 불행한 일은 그 공장이 춥기로 유명한 미네소타주 뉴 얼름에 있다는 것. 마이애미에서 온 명품족 ‘신상녀’에게 영하 40도의 추위는 그야말로 지옥. 구조조정을 하러온 그를 공장근로자들이 반길 리 없다. 루시의 실수만발 좌충우돌 악전고투가 시작된다.
 
 ‘시카고’에서 완벽한 춤과 노래, ‘콜드 마운틴’에서 자연 속의 와일드한 떠돌이 산골 처녀로 열연해 미국배우협회와 골든 글로브 상을 휩쓴 르네 젤위거.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보여준 슬랩스틱 코믹 연기를 다시 들고 왔다.

 ‘브리짓 존스…’에선 소방복을 입고 질펀한 엉덩이를 보여준 르네 젤위거의 이번 도전은 몸 개그. 하이힐을 신고 공장을 순찰하다 굽이 빠져 스타일을 구기는 건 애교 수준. 빙판에 미끄러지기, 섹시남 앞에서 난간으로 떨어지기, 고주망태가 돼 술주정을 하고 엉덩이에 달린 지퍼를 열기 위해 굴욕스런 자세를 취하며 난간에서 벌러덩 넘어지는 민망한 장면까지 서슴지 않는다.

 엽기녀가 한 남자를 만나고 둘이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건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정석. ‘미쓰 루시힐’은 이 케케묵은 정석을 그대로 따라간다. 가슴 훈훈해지는 감동까지도.

루시의 캐릭터도 전형적이다. 장작으로 불을 때야만 하는 시골에서 스위치로 켜는 난로를 찾아 마을사람들을 당황하게 하는가 하면 황소에 놀라 차 사고를 내고 고급스런 와인보다 맥주가 편한 마을사람들과의 대화에선 언제 싸움을 일으킬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하는 엉뚱녀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 신상녀 루시의 명품 재킷과 구두는 당연히 빛 좋은 개살구.

 스타일을 생명처럼 여겼던 ‘폼생폼사’ 루시가 견디기 힘든 추위에 결국 어그 부츠와 패딩 점퍼를 입는 건 한심하다 여겼던 마을사람들과 동화됐다는 뜻. 이 과정이 감정적인 울림을 준다.

 루시 즉 르네 젤위거의 망가지는 모습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미쓰 루시힐’의 노림수도 그것이겠지만 한계를 드러낸다. 불행한 사실은 젤위거의 망가지는 연기가 마냥 귀엽고 매력적이진 않다는 점. 세월 탓이든 ‘브리짓 존스…’에서 이미 보았기에 식상한 때문이든 어쩔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5억 원을 들였다는 전신성형수술 효과도 반짝할 뿐이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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