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희 향토사학자.동춘당지킴이 |
대전시 문화재 담당 공무원은 “굴뚝을 만든 시기도 알 수 없다”며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태극팔괘를 드러내놓고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동춘 고택의 태극팔괘 문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별 관심 없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에서 희귀한 것이 발견되었다면 그 값어치를 알아보려 해야 옳지, “나는 잘 모르는 것이니 알 바 아니다”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동춘당은 대전의 유일한 국가 보물이다. 동춘당 안채에 굴뚝에 같은 전통가옥에서도 보기 드문 문양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문화재 행정 아닐까?
동춘 고택은 동춘 송준길의 부친 송이창이 지은 것으로, 굴뚝의 태극 문양도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또 유교 사회라서 태극팔괘가 터부시되었다는 듯한 말도 납득하기 어렵다. 태극팔괘는 과거 선비들의 학문이었던 주자학의 원리를 도표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장롱의 장식에 행운을 기원하는 뜻으로 십장생과 함께 태극팔괘가 종종 쓰였고, 우리나라 태극기의 기원도 거기에서 나온 것 아닌가?
문화재라고 해서 다 보물급일 수는 없다. 문화재로서 가치는 있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도 얼마든지 있다. 이것들도 우리에게 다 소중한 문화재다. 그런데 이런 문화재는 우리가 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들은 전문가가 할 일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도 함께 거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대전시는 동춘 고택에서 발견된, 보기드문 태극팔괘 문양에 대한 연구를 더 해서 그 값어치를 확인해주었으면 한다.
요즘 동춘당은 그 앞 광장에 약초나 야생화를 심는 문제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전시가 동춘당 앞 광장에 약초와 야생화를 심겠다고 하자 대덕구와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얼마 전 김홍갑 대전시부시장이 동춘당을 방문하였다. 오래동안 ‘동춘당 지킴이’를 해온 필자가 보기에 부시장이 동춘당을 방문한 일은 처음이다. 마침 동춘당을 ‘지키고’ 있던 필자는 부시장에게 동춘당 사정을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그는 30분도 넘게 내 말을 경청했다.
그보다 며칠 전엔 문화재를 담당하는 하고 있다는 또 다른 간부도 동춘당에 왔었는데 휙 둘러보고 갔다. 마침 비가 와 질척질척하였는 데도 그의 구두코는 반짝이고 있었다. 동춘당 마당의 흙이 잔뜩 묻어 있는 부시장 구두와는 달랐다. 문화재를 대하는 공무원들의 마음도 두 사람의 구두만큼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생각으론, 동춘당 앞 광장에 약초를 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재는 그 문화재로서 가치와 이미지를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옳다. 동춘당 앞에 약초밭을 만들면 동춘당이 마치 약초와 특별한 관계나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동춘당 앞에는 본래 옥류각에서 흘러오는 개울이 지났었다. 그 자리를 약초밭으로 가꾸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잃어버린 동춘당의 본래 모습을 더욱 왜곡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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