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회덕향약을 만들었나요?”
지역 향토사학자들이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 보물 209호 회덕 동춘당 안내판의 오류를 지적하며 수정을 요청하고 나섰다.
회덕 동춘당 안내판에는 회덕향약을 동춘 선생이 만들었다고 적혀 있는데 동춘당 지킴이 이규희(71·대전시 대덕구 송촌동)씨는 “우암 송시열 선생의 회덕향안(懷德鄕案) 서문을 보면 고을에 이전부터 향안이 있던 것을 한 향생이 잃어버려 동춘 선생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수정 윤색(修潤)하게 되었다고 했다”며 “대전시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대전지리지에도 제월당 송규렴이 1672년 회덕향약을 지었다고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임헌기(전 한밭문화마당 대표)씨도 “동춘 선생이 향약을 만들었다는 표현은 일반인에게 회덕향약을 동춘 선생이 처음, 그것도 모두 만든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 바르지 못하다”면서 “분실된 회덕향약을 동춘과 우암, 제월당 선생이 다시 만들었다고 적는 게 맞다”고 말했다.
동춘당을 ‘동춘당 송준길 선생이 아버지가 처음 세웠던 건물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쓴데 대해 향토사학자 김정곤(65대전시 대덕구 읍내동)씨는 “동춘당은 송준길의 아버지인 송이창(1561~1627)이 세웠으며 당의 일부가 허물어지자 송준길 선생이 38세 때인 1643년(인조 21)중건한 별당 건물”이라고 적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또 “송준길 선생의 호는 동춘(同春)이고 선생이 기거하던 사랑채 이름이 동춘당(同春堂)이지 안내판처럼 동춘당이 선생의 호는 아니다”라며 “송준길의 자(字)는 명보(明甫)이고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아호(雅號)는 동춘, 당호(堂號)는 동춘당, 시호(諡號)는 문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김 씨는 옥오재 송상기 신도비, 송희갑 묘비, 송애당 중수기, 동춘 선생이 포저 조익에게 당기(堂記)를 부탁한 서한문 등을 들었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의 문집인 송자대전에도 동춘 선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동춘당으로 문병을 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당대 유생들의 문집을 두루 살펴본 결과 동춘당은 당호로, 동춘은 아호로 구분해 표기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전시 문화재 담당자는 “동춘당 안내판의 오류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다”면서 “학자들간 다양한 주장이 있기 때문에 문화재 설명에 대한 오류가 확인될 경우 문화재 전문 교수와 학자들이 관련 자료를 검토해 문화재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임연희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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