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달 한국과학기술대학 초대학장 |
학생들에게 고무줄 하나씩을 나누어주고, 이 고무줄을 동력원으로 하여 가장 빨리 달리는 배를 만들어 오라는 게 문제의 한 사례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 같지만 재료의 선택,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배의 모양, 동력 발생방법, 효율적 동력 전달방식 등 답이 여러 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창의성 계발에 크게 도움이 되는 그런 문제를 소개해주었고, 우리의 교육과정 개발에 많은 참고와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은 스탠포드(Stanford)대학교의 전자과 교수가 한국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해 협력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내가 스탠포드대학 학생 시절에 그분의 강의를 들은 적 있었고, 명강의 교수로 정평이 나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쓴 책은 대학에서 교과서로 널리 채택되고 있었다. 그분이 한국에 와서 한국과학기술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분은 대학에서 은퇴하고 대학의 대외 대사자격으로 해외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스탠포드대학은 옛날부터 대학의 강의를 실리콘밸리 입주회사에서 교육방송형식으로 원격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강의를 비디오로 만들어 판매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비디오를 한국과학기술대학 강의로 채택하면 우리 학생들은 국내에서 스탠포드대학 강의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그 후 필자가 미국 방문 길에 그 대학에 들러서 자세한 협의를 하기로 했다. 얼마 후 그 대학을 방문하여 비디오강의실에 직접 앉아서 강의를 들어보았다.
강의담당 교수는 학생의 질문이 있을 때 비디오를 멈추어 답하는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도 하면 될 것 같이 느껴졌다. 비디오강의 테이프의 가격은 $7,000였다. 귀국하여 얼마 후 나는 우리 대학 조교수 두 분을 한 학기 동안 방문교수로 그 대학에 파견하여 그 대학의 교수 방법을 습득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스탠포드 대학의 영재교육 프로그램 일부를 한국과학기술대학에서 실행하도록 했다.
그러던 중 한국과학기술대학의 부학장을 노벨상 수상자로 보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한국과학기술대학이 대학설립법으로는 영재교육기관으로 되어있으나 아직은 초기단계라서 노벨상 수상자를 유치하기는 쉽지 않은 때였다. 스웨덴의 노벨재단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추천하는 업적을 가장 무게 있게 심사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벨상수상자와 인연을 맺는 것은 장차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우리 대학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노벨수상자를 구하러 교육전문 교수 한 사람을 대동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필자가 수학하여 인연이 있던 버클리 대학(UCB)과 스탠포드 대학을 위시해 영재대학 Caltech, 페니실린을 발명한 Salk 연구소 등을 방문하여 7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만났다. 그들을 만난 자리에서 신생대학이지만 한국의 영재교육기관으로 출범한 한국과학기술대학과의 협력을 상의했다. 그중 나이가 60대로 보이는 Donald Glaser 교수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과정 연구생으로 있을 때 맥주병 속에서 생기는 거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방사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한 인물이었다. Bubble Chamber로 불리는 이 장치는 1952년 그가 대학원 학생 때 발명했고 그로 인해 35세 때인 196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것이다.
Glaser 교수 내외분을 1986년 3월 2일에 있었던 한국과학기술대학 제1회 입학식에 초청하였다. 그리고 우리 대학의 젊은 교수들의 연구과제 지도를 협의했다. Glaser 박사는 1년에 2~3회 한국에 와서 연구과제 조언을 해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설립 초기의 대학이라 비록 진지한 연구를 할 상태는 아니었으나 그의 제안을 받아 연구분야를 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과학기술대학이 이같은 초창기의 노력을 통해 한국 영재교육의 산실이요, 한국과학기술 발전의 견인차가 돼온 것이다. 대덕에서 탄생한 이 대학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밑거름이 되어, 대전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대학으로, 나아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고 있음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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