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조선 탐정 연쇄 살인마를 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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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조선 탐정 연쇄 살인마를 쫓다

<그림자 살인> 감독: 박대민. 출연: 황정민,류덕환,엄지원,오달수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4-03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때는 을사늑약과 경술국치 사이인 구한말. 세도가의 아들이 실종된다. 의학도 광수는 해부실습을 위해 우연히 주워온 시체가 바로 실종된 세도가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살인범이 될 위기에 처한 광수는 ‘돈만 내면 누구든 찾아준다’는 진호를 찾아가 진범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주로 불륜현장 급습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진호는 거액의 현상금에 현혹돼 사건에 뛰어들고. 그렇게 한국형 탐정의 좌충우돌 연쇄살인마 추적기의 막이 오른다.
 
 
 영화 포스터에 적힌 카피를 보자. ‘대한민국 탐정추리극의 역사가 시작 된다’다. ‘그림자살인’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한국형 탐정느와르의 가능성 타진이란 의미가 담긴 영화다.

 황정민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형 탐정이란 캐릭터 탄생도 의미가 있고, 나중에 시리즈물로 만들어도 근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출연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림자살인’이 한국형 탐정느와르의 가능성을 열어젖혔을까. 한국형 탐정이란 새로운 캐릭터를 빚어낸 점에선 점수를 줄만하지만 한국형 탐정느와르의 가능성 면에선 2%, 아니 20% 부족하다.

 추리극을 움직이는 요소는 딱 두 가지다. 매력적인 탐정 캐릭터와 미스터리한 사건 그 자체. 일단 한국형 탐정, 홍진호의 창조는 ‘그림자살인’의 성취라고 할만하다.

 서구의 전형적인 탐정의 말쑥한 트렌치코트 대신 쭈글쭈글한 단벌 양복이 전부인 그는 ‘보잘 것 없는’ 심부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좌충우돌 어수룩한 조선의 탐정이다.

 황정민은 ‘정의의 사도’가 아닌 동물적인 감각으로 수사하는 탐정의 면모를 코믹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셜록 홈즈의 조력자 왓슨 박사를 영리하게 벤치마킹한 류덕환의 호흡도 좋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층층이 쌓아가는 줄거리도 좋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들려주는 방식에 있다.

 관객은 단지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를 궁금해 하는 게 아니라 추리에 참여해 벌이는 ‘두뇌싸움’에서 재미를 찾는다. 그런 점에서 세세한 것까지 관객에게 다 먹여주려 드는 ‘그림자살인’은 너무 친절해서 탈이다. 해결의 방식도 헐거워 스릴러로선 심심하고 추리에 동참하기도 전에 범인이 드러나 맥이 빠진다.

 이런 약점을 상쇄하고 남는 게 풍부한 볼거리다. 신문물이 밀려들어오는 구한말 경성의 모습은 매혹적이다. 전통과 신문물이 어우러진 역동적인 기운은 강렬하다. 그동안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빠뜨리지 않았던 넓은 대로와 전차가 ‘그림자살인’엔 없다. 관객들을 디테일한 골목길로 인도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인물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연출은 높이 살만하다.

 ‘그림자살인’을 보면서 여러 영화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런 일. 사건을 쫓는 진호와 광수는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를 연상시키고, 만시경(망원경)과 은청기(도청기)를 만들어 진호를 돕는 여류발명가 순덕은 007 시리즈의 Q를 떠올리게 한다. 경쾌한 리듬은 007 시리즈와 닮았고 인력거 추격신은 ‘인디아나 존스’다. 경성 거리의 한옥 지붕과 저택의 유리창을 뚫으며 쫓고 쫓기는 장면은 영락없이 ‘본 얼티메이텀’ 추격전의 구한말 버전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것이든 남의 것을 가져온 것이든 몽땅 구한말 시대 속으로 끌고 들어가 우리 것으로 버무려낸 솜씨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권력에 기생하여 한몫 챙기려는 서커스 단장의 야욕에서 최근의 ‘성상납’문제를 건드리고, 가난한 사람은 치료하지 않으려는 의사, 출세에 눈이 먼 경찰서장의 비리까지, 시대를 넘어선 사회의 음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도 날카롭다.

 한국형 탐정느와르의 성공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시대극으로 보면 훌륭하다. 흥미진진하고 꽤 볼만한 웰 메이드 영화다. 재기 넘친 신인감독의 출현이다./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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