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감독(62)에게는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부족할 듯하다. WBC에서 메이저리거를 상대로 위대한 도전장을 내밀며, 승리의 역사로 이끈 김 감독. 개막전 준비에 한창인 김인식 감독을 1일 오후대전 한밭야구장에서 만났다. 다소 피곤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믿음의 야구’를 선보인 그에게 여유가 있었다.
그는 이제 WBC 대회의 환희와 좌절의 순간을 뛰어넘어, 2009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또 다른 위대한 도전에 나선다. 김 감독의 올 시즌 위대한 도전 드라마 ’시즌 II’는 오는 4일(인천구장) SK와 개막전에서 시작된다. 대전 팬들은 다시 한번 김 감독의 각본없는 드라마 연출을 기대하고 있다. <편집자 주>
=젊었을 때 음주와 흡연(1일 3갑)이 좀 지나쳤죠. 몇 십년을 그렇게 해왔으니, 말 다한 거지 뭐. 특별히 즐기는 운동은 없어요. 시즌 개막 후 숙소에서 한밭야구장까지 30~40분 걸어다녀. 4년 넘게 스포츠 마사지를 받으면서, 근근히 버티고 있지 뭐. 스트레스 해소법도 뭐 특별한게 있나. 예전에는 술로 풀었는데, 요즘은 집에서 쉴 때 TV 채널 돌리는 재미로 살죠.
-믿음의 리더십이 회자되고 있는데, 평소 가족 리더십은.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솔직히 신경을 아예 못써요. 집에서는 내놨다 싶을 정도로 이골이 났죠. 가족들이 민감한 시기에는 아예 말을 안 걸고 조심하기도 하죠. 미안한 마음이야 있지만, 야구 감독의 숙명이라면 숙명이죠.
-환희와 좌절의 순간이 있었을텐데.
=두산베어스 감독으로 있던 1995년과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여전히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남들이 안된다는 선수를 정성들여 가르친 후, 그 선수가 일정 궤도에 오르며 맹활약했을 때 느끼는 환희는 또한 남다르구요. 사실 겉으로 보기에 좌절은 크게 없었죠. 주위에서는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라고 얘기해요. 하지만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 감독으로 부임하던 시절은 힘든 시기였죠. 3년 후 감독을 그만 뒀는데, 함께 생활하던 코치를 챙기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1995년 OB베어스 감독으로 복귀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높이 올라갈수록 고생할 때 함께한 사람을 더 잘 챙겨야한다는 것. 그제서야 깨달았죠.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에서 즉시 주전 도약이 가능한 선수를 꼽는다면.
=투수로는 봉중근, 윤석민, 정현욱, 타자로는 김태균이 가능할 것으로 봐요. 대표팀 소집 초기 눈에 띄지 않았던 정현욱의 성장도 놀랍고, 굉장히 탐나는 선수입니다. 류현진, 김광현은 아직 컨트롤 면에서 보완이 필요합니다. 다만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일본과 결승전, 임창용의 10회 실투를 놓고 말이 많은데.
=9회에서 안타를 맞은 이치로와 정면 승부를 피하라는 주문을 했어요. 포수 강민호도 알아들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창용이게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어요. 창용이의 잘못은 아닙니다. 내 잘못이죠. 보다 확실한 제스춰를 취해야했는데, 그렇게 못했죠. 30년 넘게 감독 생활했지만 매 경기마다 뜻밖의 상황이 일어나니…. 감독직은 역시 쉽지 않아요.
-세계 야구와 비교한 한국팀만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솔직히 개인기량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단기전 승부, 그리고 단체경기는 개인 기량만 가지고 되지 않거든요. 정신력과 투지, 근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국 선수들은 이를 갖췄고, 세계를 놀라게 했구요. 특히 선구안(볼을 고르는 능력)이 좋아요. 대회전 일부 외신에서는 한국팀을 ‘스몰볼’로 평가 절하했지만, 한국팀은 소몰볼와 빅볼이 한데 어우러지는 경이로운 야구를 선보이지 않았습니까?
-감독의 용병술이 국내ㆍ외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30여년간 감독 생활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 뭐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직감, 즉 생각한 대로 운이 따라줬을 뿐입니다.
-대회 전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이 있다면.
=지난 2월10일날 대표팀 첫 모임을 가진 후, 대회 전까지 선수들과 3번의 공식 미팅을 가졌는데요. 이 얘기만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야구가 좋아서 하지 않았는가. 이 자리에 있으면 성공한 케이스 아닌가. 현재까지 잘 해왔듯이, 돌아갈 때 웃으며 헤어지자’라고. 그랬더니 선수들이 알아서 잘 해주더라구요.
-용병술이 전술이라면, 믿음의 야구는 이를 넘어선 전략으로 표현할 수 있을 듯 한데.
=야구를 떠나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일을 맡겼을 때를 생각해보면 편합니다. 부하 직원은 완벽하지 않고, 위에서 보면 못하는 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잘못했을 때 위에서 꾸짖으면, 그 사람은 다음부터 자신의 능력발휘를 제대로 못하게 되죠. 그래서 잘못하는 점이 있어도 상황에 따라 지켜보기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거든요. 이번 대회에서 주전 활약이 불투명했던 이범호와 정현욱이 맹활약하지 않았습니까?
-준우승해서 좀 아쉬움이 남으실텐데, 대표팀 감독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절대 맡을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그렇겠죠. 앞으로는 시즌 우승팀 감독이 무조건 맡는게 아니라, 여러가지를 종합적으로 봐서 선임해야된다고 봅니다. 자꾸 성적에 초점을 맞추니까, 다들 안하려고 하죠. 아무튼 나는 이제 빼줘. 이번에도 안 맡으려 했는데, 하일성 총장의 잔꾀에 넘어갔어(웃음). 하 총장도 술 먹으면 안될 만큼 몸이 안좋은데, 내 앞에서 자꾸 술병을 꺼내놓고 괴로운 척(?)을 하더라구.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김태균과 이범호가 WBC 대회 내내 주목받은 상황이고, 올 시즌 후 자유계약(FA) 선수로 풀리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걱정이야 되지만…. 국내ㆍ외 각 팀에서 두 선수를 가만 놔두겠어요?
-지난 2001년 두산베어스 감독 때 우승한 이후, 7년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는데.
=우승, 당연히 하고 싶죠. 하지만 현재 한화는 세대 교체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송진우와 구대성, 문동환은 컨디션도 안좋고 아픈 데가 많고, 정민철이만 선발진에 포함된 수준이고. 유원상과 김혁민, 안영명이 대신해야하는데, 앞으로 2년 정도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나저나 WBC 대회 후 이리저리 불려다녀, 시범경기를 두 게임 밖에 못 봤어요. 남은 기간 팀을 잘 추스리려구요. WBC가 한화팀에 미친 긍정적 영향도 많아서 상승효과는 분명 있을 거라고 봐요. 작년에 시즌 종반까지 2위를 달리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5위로 떨어진 아픔은 씻어야하지 않겠어요. 원상복귀해야죠.
*김인식 감독은 누구?
1965 배문고 졸업
1990~1992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
1995~2003 두산베어스 감독(1995, 2001 한국시리즈 우승)
2000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팀 코치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감독
2004~ 한화이글스 감독
제1회(2005), 제2회(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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