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재술 한국교원대학교 총장 |
예컨대 네거리의 신호등도 고장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신호등이 먹통이 되는 것은 그래도 낫지만 모두 파란 신호등이 켜진 상태로 고장이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방향의 차들이 모두 네거리를 통과하려고 달릴 것이 아닌가? 이것은 큰 재앙을 몰고 오는 고장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모든 신호등이 빨간 신호등에 불이 들어온 상태로 고장이 나면 어떨까? 혼란이 야기되기는 하겠지만 큰 사고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신호등이 고장 나되 큰 재앙이 생기지 않도록 고장 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높은 담장도 넘어질 수 있다. 그런데 넘어지더라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 쪽이 아니라 사람이 적은 마당 쪽으로 넘어지도록 하는 것이 안전하게 넘어지게 하는 기술이다.
fail-safe의 반대말을 fail-disaster라고나 할까? 고장이 곧 재앙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학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 같다. 누구나 실패한다. 하지만 한 번의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로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패가 곧 큰 화로 연결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머리가 나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그러한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은 왜 실패가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재앙으로 연결되는 것일까?
성현들의 가르침이 많지만 이 많은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실패하더라도 아주 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현들의 말씀 그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 받지는 못한다. 정직하라는 성현의 말씀이 있지만 정직하게 살아도 사기 당하고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정직하게 살다가 실패하는 경우와 정직하지 않게 살다가 실패하는 두 경우 어느 것이 더 인생에 치명적인가 하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한 정권 하에서 정의롭게 일을 하다가 상부에 미움을 사서 옷을 벗는 경우와 부정을 저질러서 옷을 벗는 경우, 둘 다 중요한 자리를 박탈당한 것은 같지만 그 결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다음 정권에서 재 발탁 될 수도 있지만 후자는 영원히 그런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공직 사회에서는 자기가 아무리 청렴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관행 때문에 또는 아래 사람을 잘 보살펴 주려고 하다가, 아니면 부하의 실수로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비록 처벌을 받지만 많은 사람의 동정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재기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다가, 또는 상관에게 자기만 잘 보이려고 하다가 일을 그르쳐서 처벌을 받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동정을 사기는커녕 잘 됐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게 된다. 전자인 경우에는 실패를 하기는 했지만 안전한 실패(fail-safe)라고 한다면 후자는 한번 실패했지만 정말로 실패(fail-disaster)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일수록 정도를 가야 실패가 재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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