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이순신이 없었다면 정말 이 나라 운명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그분 정신이 깃들고 숨결이 배인 아산의 고택 부지, 무예를 닦던 방화산 일대 임야가 충무공 15대 종부(宗婦)의 빚 때문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경매가 진행 중이다. 한국인이라면 위인전을 통해 시뮬레이션으로 그려봤을 절대 유일의, 절대 불변의 그 땅을 말이다.
화끈한 만우절 거짓말이고, 낚였다면 차라리 좋겠다. 왜적 칼에 숨진 장군의 아들 면의 묘소도 거기 있다. 울음이 “잇새로 새어 나오려” 하자 소금창고에서 “숨죽여 울었다”고,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장군이 겪은 참척(慘慽·자식이 아비보다 먼저 세상을 뜸)의 아픔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충무공이 살아난다 해도 소금창고에 가서 통탄할 일이다. 문화유적지를 사유지로 방치하다 그예 올 것이 왔다.
어찌 되었든지 현충사와 이순신 고택 일대는 우리에겐 견고한 굳은살과 같다. 이달 28일부터 엿새 간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가 열린다. 헤아려 보니 축제 이튿날인 5월 4일이 2차 경매일로 잡혔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 인자하지 못하신가.’ 난중일기가 따로 없다.
내친걸음이다. 낡은 12척으로 적선 133척을 사수한 공을 생각하면 그러나 오히려 쉽다. 나라도 구했는데 유적지 하나 못 지키는가. 예산 타령 그만하고 사인(私人) 간의 채무관계엔 ‘노터치’라고 정부는 그만 말하라. 그 무한 가치를 따지면, 수십조의 4대강 예산에 견주면 경매가 몇 억이 ‘껌값’일 수 있다.
“현인, 장자들이 살던 마을이나 그들이 거닐던 마당에는 흔히는 큰 나무들이 선 것을 본다. 온양에 이 충무공이 사시던 마을에도 그가 활 쏘던 언덕이라는 데 절벽과 같이 훤칠히 솟은 두 책의 은행나무가 반은 고목이 되어 선 것을 보았다. 나는 충무공이 쓰시던 칼이나 활이나 어느 유품에보다 그 한 쌍 은행나무에 더 반갑고 더 고개가 숙어졌다.” 이태준이 『무서록』에 70년 전 쓴 글 그대로다.
칼 잡은 손은 오른손이다, 왼손이 맞다, 침 튀기며 이순신 찾기 하던 애국자들. 어디서 술래잡기를 하는가. 혹은 구경꾼이거나, 혹은 사유재산권 운운하며 충무공의 종가 며느리나 덕수이씨 문중에만 맡기지 말고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숭례문 태우더니 현충사 팔아먹는다는 소리나 듣는다면 남부끄럽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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