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율로 연합비뇨기과 원장 |
내 자랑 같은 이야기라서 언급하기가 꺼려지기도 하지만 대학병원 수련의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다른 과의 과장님부친께서 전립선비대증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후 삽관(수술로 제거된 전립선요도부분이 잘 치유되도록 3-7일정도 요도에 삽입해 놓는 관)을 제거할 때가 되어 특별히 필자의 전공인 비뇨기과 과장님께서 환자의 아들이신 과장님과 함께 병실을 방문하시어 제거하려하자 환자분께서는 완강히 거부하셨다. (일반적으로 요도에 삽입해놓은 관은 주치의인 수련의들이 관리한다.)
환자분은 주치의인 내가 오기 전에는 자신에게 손끝 하나도 댈 수 없다고 굳은 의지를 굽히지 않으셨다. 결국에는 주치의였던 내가 와서야 어이없어하는 과장님 두 분 앞에서 삽관을 제거함으로 비로소 문제는 해결되었던 것이었다. 물론 과장님께서 집도하셨고 삽관을 제거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지만 환자분에게는 과장님도 필요 없었고 평소에 자기마음의 문을 열어놓았던 주치의만이 신뢰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이후로 그 과장님의 제자들에게 분에 넘치는 나에 대한 칭찬으로 인하여 역풍이 불어 당분간 힘이 들었지만, 일을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고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의사도 많고 인터넷이 발달된 지식의 홍수 속에 있어 의사를 잘 믿지 못하는 요즈음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에서는 아마도 치료행위도 중요하겠지만 환자나 보호자의 관상을 잘 보아 환자나 보호자에게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소극적인 태도일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방편이 아닐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서도 이러한 관계는 작용하는 것 같다. 아침마다 산책을 아내와 함께하는데 언제나 집에서 기르는 개를 동반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유독 몇몇 사람들에게는 달려들거나 민망할 정도로 짖어대며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잘 살펴보니 개를 지나치게 무서워하여 두려운 모습으로 주춤거리거나 도망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환한 얼굴로 귀엽게 여기면서 만지려드는 아이들에게는 꼬리를 치며 기분좋아하는 모습으로 대한 곤 한다. 나중에 동물에 관한 책을 보면서 이해가 되었는데 개는 상대방의 공포에 의한 전율을 미리 감지하고 적으로 판단하여 짖어대며 공격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개처럼 예민하지는 않겠지만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비슷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람마다 성장과정이나 살아오는 가운데 받아온 상처 때문에 또는 사랑받지 못하고 의심만 받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인격 때문에 마음 문을 열지 못하고 상대방을 의심만 한다면 이젠 치유가 필요할 때다. 남은 나에게 그렇게 대해왔지만 나는 이제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마음 문을 열어 따뜻함을 보여준다면, 나의 행복도 이 사회의 훈훈함도 되찾을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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