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양군관학교' 지하통로 첫 공개... 독립투쟁 의지 '생생'

'낙양군관학교' 지하통로 첫 공개... 독립투쟁 의지 '생생'

[임정90주년]승리의 역사를 가다 4.본격적인 군사조직 양성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27 13면
  • 난징ㆍ광조우ㆍ뤄양ㆍ우한ㆍ쿤밍=맹창호 기자난징ㆍ광조우ㆍ뤄양ㆍ우한ㆍ쿤밍=맹창호 기자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군대는 국가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수립된 중국은 엄연히 남의 나라이자 남의 땅이다. 이곳에서 군대를 조직하고 사관을 양성하려면 중국정부의 지지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주와 같이 무정부 상태라면 모르되 관내(만주를 제외한 산하이관 이남)에서 중국정부가 한국군대의 자체양성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은 실로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의 힘이었다. 비록 중국군관학교 일부를 사용하고 국제관계에 따라 중국인 이름을 사용해야 했지만, 임시정부는 자체적인 교육내용을 갖고 본격적인 군관양성에 나섰다. 여기에는 서로 입장 차에 따른 이견이 있었지만, 만주와 관내 지역은 물론 좌ㆍ우익의 각 진영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참여한다.

임시정부의 김구와 의열단의 김원봉에 의해 주도된 독립군 간부양성은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교육의 일환이지만 이후 광복군 창설은 물론 광복 대한민국의 국군에 필요한 인적자원을 제공해 주었다.

▲군사조직 양성을 위한 노력

창립 당시 불과 5자루의 소총이 전부였던 서로군정서가 만주의 무장투쟁에서 큰 활약을 벌인 데는 신흥무관학교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간부 육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등 수천 건의 무장항쟁마다 3500여 명의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희생으로써 독립운동에 획을 그어 나갔다. 무장항쟁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근간도 이뤄나갔다.

이어 선각자들은 중국의 군관학교에 애국청년들이 근대적 군사훈련을 받도록 했다. 윈난(雲南)육군강무단을 비롯한 광조우(廣州)황포군관학교, 우한(武漢)중앙군사정치학교 등에는 시기마다 많은 한국 청년들이 보내졌다.

▲ 낙양군관학교 부지 : 후베이(湖北)성의 군벌 우패이푸(吳佩孚) 낙양병영 내 위치했다. 이곳에서 임시정부는 처음으로 지청천을 책임자로 우리의 교육내용에 의한 초급장교인 무관을 길러낸다.
▲ 낙양군관학교 부지 : 후베이(湖北)성의 군벌 우패이푸(吳佩孚) 낙양병영 내 위치했다. 이곳에서 임시정부는 처음으로 지청천을 책임자로 우리의 교육내용에 의한 초급장교인 무관을 길러낸다.

독립운동을 위한 중국 군사학교에 진학한 한국인은 1916년 윈난 육군강무당의 이범석(16기)등 4명이 처음이다. 그들은 신규식이 설립한 동제사의 주선으로 윈난육군강무당에서 군사훈련을 받는데 한국인 졸업생은 50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지지만 명단이 없어 확인되는 경우는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쒸청챈(徐承謙) 윈난육군강무당문물관리보호소장은 “1915년을 전후로 동아시아 독립운동가들이 쑨원의 추천으로 강무당에서 정규 군사훈련을 받았다”며 “한국인은 이범석이 처음으로 그의 동기 중에는 중국 10대 원수인 엽겸영(葉劍英)도 있는데 기록부족으로 아직 졸업생을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25년 7월, 통상 ‘황포군관학교’로 불리는 중국국민당 육군군관학교에 3기부터 한국인 입학이 허용돼 임시정부에서 교육생을 파견했다. 의열단은 단순 테러에서 대중적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하면서 김원봉 등 단원 24명이 4기생으로 입교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명단이 확인된 한국인 입학생도 73명에 달한다. 이어 중앙군사정치학교 무한분교도 1927년 특별반을 설치해 한국인의 받아들였는데 입교자가 200명이나 됐다.

이들 중국 무관학교를 졸업한 한국인들은 중국국민혁명 참가 및 독자적인 한국독립운동을 전개했고, 이념과는 별개로 모두 항일무장투쟁과 광복군 지도자로 성장했다.

▲임시정부, 사관생을 육성하다

거듭 강조되지만 1932년 한인애국단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는 침체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일거에 반전시킨다. 특히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중국도 한국의 독립투쟁 역량을 새롭게 인식한다.

중국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주석은 김구를 만나고 싶어했다. 난징(南京)으로 김구를 초대한 장제스는 “천황을 죽여도 천황은 또 있고, 대장을 죽여도 대장은 또 나오니 독립전쟁을 위해 한국인의 무관양성”을 제안한다. 이는 김구가 진실로 바라던 바였다. 낙양군관학교 내 한인특별반 설치가 합의됐다(백범일지).

중국 측은 비용 일체를 대는 만큼 중국 군관교육을 주장했다. 하지만, 임시정부는 이 부분에서 단호했다. 아무리 중국의 지원에 의존한다지만 훈련생에 대한 정치와 군사훈련을 한국인 교관이 담당하도록 버텼다. 마침내 중국 측으로부터 수락을 받아낸다. 이 회담을 통해 임시정부는 자체적인 독립군 사관양성이라는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든다.

▲ 천녕사는 1935년 3기생을 양성한 곳이다. 현재 거의 폐허상태로 방치돼 있다.
▲ 천녕사는 1935년 3기생을 양성한 곳이다. 현재 거의 폐허상태로 방치돼 있다.

사실 임시정부도 상하이에서 이미 6개월 속성과정의 육군사관학교를 운영했었다. 하지만, 4회까지 졸업생 수십 명만 배출하고는 그 맥을 잇지 못했다. 전 국민에게 의무병역(국민개병제. 1920년 3월)을 적용하고 직할 군대의 창설과 운영을 하려던 임시정부로서는 장교육성이 무엇보다 절실했지만, 중국 관내 지역에서 정규 무관학교 운영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애써 모아놓은 애국청년조차도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이후 낙양무관학교 한인특별반이 구성되기까지 중국정부의 군인양성기관에서 훈련을 받도록 하는 조치가 고작이었다. 중국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만큼 자체교육이 불가능했다.

임시정부는 한국독립군 총사령 이청천을 책임자로 상하이, 난징, 베이징, 톈진 등에서 한국청년 92명을 모집했다. 대장에 이범석, 교관에 오광선, 윤경천 등이 훈련을 담당했다. 수업은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 일반과목과 특무공작, 소총, 기관총 조립법, 폭탄설치 등 실기과정이 함께 진행됐다. 1935년 4월 1기생 62명이 배출됐다.

2차 중국취재에서 찾은 뤄양군관학교는 이미 주변 아파트에 둘러싸였고 광장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건물지하에서 뤄양비행장으로 연결된 비상 방공통로는 건물에 입주한 업체의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일제의 방해공작도 만만치 않았다. 일제는 전면전을 꺼리던 중국정부에 외교적 압력을 넣어 한국인 특별반을 해체한다. 한국인 후보생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군에 편입됐고 중일전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재학생들은 난징 중앙군관학교본부로 진학해 훈련을 계속했다. 이들은 보통반과 특별반으로 나눠 1936년까지 250명이 배출되는데 뒷날 한국광복군의 기간요원이 된다. 임시정부는 1934년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국특무대독립군을 만들고 1935년 2월에는 중국중앙군관학교 입교생 예비교육을 위한 학생훈련소를 별도로 설치한다. 광복군 창설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 낙양군관학교 지하통로 : 오패부 사령부의 건물 지하에는 인근 낙양비행장과 낙양역으로 연결된 1km의 지하통로가 설치돼 있다. 이 지하통로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데 국내 언론으로는 본보에 처음 공개됐다.
▲ 낙양군관학교 지하통로 : 오패부 사령부의 건물 지하에는 인근 낙양비행장과 낙양역으로 연결된 1km의 지하통로가 설치돼 있다. 이 지하통로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데 국내 언론으로는 본보에 처음 공개됐다.
▲의열단도 조선혁명간부학교 설립

독립을 위한 군사조직의 양성은 김구 중심의 임시정부에서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의열단을 조직해 항일활동을 전개하던 김원봉도 독립운동에 군대와 장교양성이 시급하다는 데는 임시정부와 같은 시각이었다. 황포군관학교 출신인 김원봉(4기)은 자신의 동기생이면서 장제스의 측근 중 하나인 떵지에(謄傑)를 통해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낸다.

이들은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 제6대로 배치된다. 간부훈련반은 모두 6대로 편성됐는데 제5대까지는 중국인을 수용하고 한인은 6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의열단원들은 1932년 9월 남경에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제6대)를 설립해 1기 26명, 2기 55명, 3기 44명 등 3년간 12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학교의 설립목표 역시 임시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실행방식에는 차이를 보였다. 졸업생을 국내와 만주로 파견해 일만(日滿)요인 암살, 재만항일단체 제휴, 선만(鮮滿)노동농민층 혁명공작, 만주국 경제교란, 특무활동에 의한 물자획득 등을 주 목표로 삼았다. 정규군보다는 게릴라전이나 첩보, 특무임무에 주안점을 두었다.

교육내용도 정치, 군사, 실습으로 나줘져 있었지만 주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은 파괴, 기습, 유격전 등 특무공작에 필요한 경우가 주를 이뤘다.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정치훈련 40%, 내무 10%, 전술 30%, 학과 20% 비율로 배정해 정신교육과 전술교육에 치중한 임시정부와는 달랐다. /난징ㆍ광조우ㆍ뤄양ㆍ우한ㆍ쿤밍=맹창호 기자 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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