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마음껏 더 줄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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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숙빈]마음껏 더 줄 수 있는 것은…

[수요광장]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25 21면
  •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 교수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생각 없이 되는대로 채널을 돌리다가 눈에 띄는 대로 볼 것을 고르는 필자가 즐겨보는 것 TV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00속의 달인”이다. 몇십 년씩 해 온 기능이 놀랄만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 교수
까마득히 쌓아올린 상자를 가볍게 조종하여 움직이는 사람, 엄청난 속도로 그러나 정확히 생선 궤짝에 못을 박는 사람, 긴 줄의 타이어를 신기하게 굴려 빠르게 정리하는 사람, 무거운 보트를 자유롭게 다루는 사람 등등. 보고 있노라면 그 솜씨에 감탄해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애초부터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자 배우고 익힌 예능이나 스포츠 기능이 아니지만 놀랍고 대단하기는 그에 못지않다. 일상적인 삶의 현장에서 익힌 기능이기에 꾸미지 않아 자연스러운 주인공들의 모습은 멋지게 치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 스타들 마냥 당당하고 멋지다.

재방송인지 어쩐지 모르지만, 엊그제 TV를 보다 보니 부부가 모두 달인인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주로 함께 생업에 종사하는 부부들인데 마침 꽈배기 도넛을 튀겨서 파는 부부를 소개하고 있었다. 오누이라 해도 좋을 만큼 비슷하게 생긴 두 사람이 서로 겨루기도 하고 칭찬도 하는 모습을 보며 부부가 된 인연도 대단한데 삼사십 년씩 한 공간에서 온종일 같이 지내는 그 인연은 어떤 것일까 싶었다. 날렵한 솜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꼬고 기름에 튀기고 설탕을 묻혀 포장하는 동안 시종 서로 바라보며 웃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마치 페어스케이팅이라도 하는 듯 박자가 맞았다.

손님에게 넉넉하게 도넛을 주는 이들에게 기자가 질문을 했다. 그렇게 많이 주어도 남느냐고? 그들이 대답하기를 “군인들은 많이 주어야 해요, 고생하니까. 우리가 과일이나 보석을 팔지 않는 게 참말 다행이에요. 남에게 받아온 과일이나 값비싼 보석이라면 이렇게 마음대로 더 줄 수 없잖아요.” 아, 그랬다. 그들을 보며 마음이 충만했던 것은 놀라울 만큼 숙련된 기능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솜씨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그 안에는 깊은 인간애가 들어 있었다. 아마 그들은 누가 오더라도 더 줄 것이다. 자주 오니까 더 주어야지, 가난하니까 더 주어야지, 노인이니까 더 주어야지, 자라는 아이니까 더 주어야지 하면서. 가진 것을 마음껏 나누는 후한 인심, 넉넉한 웃음을 보며 자비니 사랑이니 하는 흔한 말보다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마음의 주인. 그들이야말로 자유인 아니겠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껏 더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도넛을 만들어 파는 부부가 그들의 생업을 통해 마음껏 더 주고 있으니 나도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보는 게 우선 순서일 것이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교육의 특성상 같은 내용을 반복할 수 없으니까 매번 새로운 내용을 넣으려 애쓰고 있다. 매년 달라지는 학생들을 보면서 새로운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교수인 내가 학생들에게 마음껏 더 줄 수 있는 것은 가르침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가르친다고 다 배우지 않는다. 배우고 싶어야 배운다. 한편,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르침은 일방적인 행위일 뿐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잘 배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가르침이다. 잘 배우고 싶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움에 대한 학생들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 세계야구대회의 결승전에 사상 처음으로 진출했다는 한국 야구팀도 선수들을 믿는 감독의 용병술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믿음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월드컵 축구에서도 이미 절감했는데 또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각기 다른 선수들의 강점과 취약점을 알아 적시에 쓰는 리더십, 언제 뛰라 하고 언제 쉬라 해도 따르는 팔로우십, 이것이 모두 믿음에 기초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잘 알아주는 사람의 말은 잘 따른다. 학생들도 부족한 게 많지만 잘 배울 수 있다고 믿어주면 열심히 따른다.

마음껏 주는 사랑에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도넛가게 부부처럼 나도 안에 훔쳐두었던 믿음을 더 들어내 주자. 믿을 수 있을 만큼 알 수 있게 관심을 더 주자. 그리고 관심을 표현하자. 관심을 두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심을 표현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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