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말미에는 최소한 문화와 예술의 최첨단에 서 있는 미술관 조직이라면 일방적인 상하관계를 넘어서 소통을 지향해야 마땅하며, 부하직원의 다른 견해를 즐거워하고 그 건강한 긴장을 미술관의 발전으로 승화시킬 열린 마음을 갖추지 못한 리더가 어떻게 ‘다양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예술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겠는가, 기관장의 명령에 오로지 ‘예스’만을 외치는 학예실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미술인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전국 국공립미술관 8곳 가운데 현재 학예실장이 근무하고 있는 곳은 광주와 대전시립미술관 뿐이며 나머지는 다 공석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발단이 된 ‘전북도립미술관발전을 위한 공청회’는 전북미술발전위원회 주최로 지난 해 7월에 있었다. 해임된 김종주 씨가 참석하여 일정 부분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였던 반면 도청관계자나 관장은 모임을 피했던 것으로 그 내용이 정리되어 대전시립미술관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올려 있었기에 필자도 본 기억이 난다. 어떤 의도로, 누구의 지시로 삭제되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현재 그 내용을 볼 수 없다.
기억나는 대로 간추려보면, 현 전북도립미술관장의 독선으로 인해 도덕성과 업무수행능력이 의심이 되며, 2차에 걸친 재임기간 중 여러 문제들이 실제 도출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3차 연임이 결정되어 도립미술관의 발전과 운영에 심각한 오류와 선례를 만들 소지가 있어 재임용의 당위성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공청회에서는 전북도립미술관장의 주요업무를 미술관 수장으로서 직원들의 화합과 일할 분위기 조성, 업무에 따른 역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휘 감독하는 일, 전시기획과 교육을 학예실과 협력하여 시행하고, 지역미술관으로서 지역작가 발굴과 지역미술연구를 통해 지역작가에 대한 대외적 홍보업무, 작품구입에 있어서 학예실과 조율하여 투명하고 원칙에 따른 작품구입과 미술품 소장의 원칙 등을 열거했었다. 성명서를 읽는 과정에서 공청회 결과에 대한 예의 그 문건을 다시 발견해서 살펴보니 관장 직무수행에서 드러났던 문제점 역시 꼼꼼히 밝히고 있었다.
첫째, 학예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관여함으로써 학예업무와 역할을 침해했으며, 둘째 졸속한 전시와 자체기획력 없는 수준미달의 전시를 기획해 왔는데, 예를 들어 개관 후 기획능력을 보여준 전시는 몇 되지 않으며, 대부분 다른 사람이 기획한 것을 가지고 오거나 다른 기획에 전북작가 몇 명 끼워 넣기 식의 전시를 해왔다고 한다.
셋째, 지역미술관으로서 지역미술이나 작가에 대한 성찰과 연구는 전무하고 오히려 지역작가가 들러리 역할을 하는 전시가 많았는데 이는 모두 중앙 중심의 사고로 지역미술을 폄하하는 반 지역성을 도립미술관장이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넷째, 작품구입절차의 투명성과 전문성 없이 관장 임의대로 작품구입을 조정했으며 운영위원들은 관장의 전횡에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전북도립미술관 운영위원 가운데 작가인 위원들의 작품 대부분은 도립미술관에 소장하여왔다는 것이다.
모 포럼에서 관장은 “차기 관장에게 위임하기에는 아직 기초가 확립되어있지 않다”는 모순적 언사를 통해 미술인들의 원성을 묵살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일관된 독선과 편견 등을 드러내 왔다고 공청회 결과는 말해주고 있다.
이제 전북미술인들은 전북도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그 역할과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물이 고이면 썩듯이 한명의 관장이 장기간 운영하였을 때 변화와 개혁, 그리고 발전이라는 시대명분에 역행함을 직시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고자 하고 있다.
이번 전북도립미술관 사태를 보면서 이 일이 전북도립미술관만의 문제로 취급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핵심에 있어서 비껴갈 미술관이 얼마나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우며 또한 이러한 일이 가까운 곳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탄식을 뒤늦게 하지 않으려면 우리 지역 미술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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