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저널의 조 모겐스텐은 “영화계 최초의 글로벌화한 걸작”으로 꼽았으며, 뉴욕 매거진의 데이비드 에델스타인은 “대니 보일이 ‘트레인스포팅’ 이후 스타일과 내용을 가장 생기 넘치게 결합시킨 작품”이라고 했고, 보스톤 글로브의 타이 버는 “간단하게 말하겠다. 당신이 오늘밤 무엇을 하든 당장 취소하고 이 영화를 보시라”고 강추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한 인도 빈민가 소년의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그런데 왜 미국인들은 이 케케묵고 전형적인 신데렐라 판타지에 그토록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걸까.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성장한 소년 자말은 거액의 상금이 걸려 있는 TV 퀴즈쇼에 출연한다. 학교 문턱도 딛지 못한 고아 소년이 승승장구, 최종 단계에 이르자 경찰은 사기죄로 의심한다.
퀴즈쇼에서 주어진 문제는 우연히도 자말의 삶과 겹친다. “힌두교 라마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이란 물음에 답을 말할 수 있는 건 어머니가 살해당하던 현장에서 라마신 분장을 한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구걸을 하며 노래를 불렀기에 그 노래를 지은 시인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뿐인 형과 어렸을 때부터 운명이라 믿었던 여자 라티카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퀴즈 문제에 서사의 고리를 만들어 에피소드와 능숙하게 잇는 화술은 이야기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하고, 현재 주어진 상금에 만족하지 않고 그 다음 단계로 계속 도전하는 과정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증을 일으키며 관객들이 주인공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연출도 뛰어나다. 다양한 구도를 구사하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복잡한 상황을 긴장감 넘치게 간추려내는 편집은 탁월하다. 역동적인 카메라와 현란한 편집은 피폐한 빈민가와 그곳에 쌓인 쓰레기조차 스펙터클로 만든다.
하지만 보고나면 가슴에 뭔가가 걸린 것처럼 찜찜하다. 불편하다. 서발장대 휘저어도 걸리는 게 하나 없는 가난, 비루한 현실을 낭만적으로 보는 시선이 우선 그렇다. 구준표가 옥탑방을 보고 “정말 낭만적이야”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무엇을 얻느냐’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사느냐’다, 라는 주제를 달콤한 환상으로 개칠하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지금 사는 현실이 팍팍하다 하더라도 사탕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미국인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열광하는 이유. 그들이 좋아하는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인도에서 펼쳐지는 올리버 트위스트 스토리’를 만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안순택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