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3월 초입의 교정에서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은주]3월 초입의 교정에서

[교육단상]김은주 논산 금암중 교사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18 20면
  • 김은주 논산 금암중 교사김은주 논산 금암중 교사
“우리 정훈이 왔네. 우짠 일로 왔노?”
“엊그제 방학했다 아이가. 내 그래서 누나 보려고 달려 왔제.”
“그래, 잘 왔다. 아이고, 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

▲ 김은주 논산 금암중 교사
▲ 김은주 논산 금암중 교사
무대에서는 시극 공연이 한창이다. 한여름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누나 다희와 귀마개와 목도리, 장갑으로 무장한 동생 정훈의 몰입 연기에 2학년 아이들의 눈이 반짝인다. 비좁은 시청각실에 마련된 보잘 것 없는 무대지만,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긴 대사도 막힘없이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아이들의 귀와 눈은 하나가 된다. 어렵다고 손사래 치는 시를 아이들은 배꼽 쥐게 웃고 눈시울을 붉히며 연극으로 감상하고 있다. 무더운 7월의 그 시간은 다희와 정훈의 또 다른 능력, 훌륭한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발견한 날이기도 했다.

교사라면 아이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멋진 유머로 유쾌한 수업을 이끌어 가시는 선배 선생님을 부러워하며 열심히 유머를 익혀 수업 시간에 적용했지만, “썰렁해요.”라며 시큰둥한 아이들의 반응에 고민했던 시절! 수업 시간에 틈만 나면 엎드려 자던 녀석이 연습장에 멋지게 그려놓은 만화를 보곤, 다원적 관점에서 지능을 파악한 가드너(H. Gardner)의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 이론’을 떠올린 것은 행운이었다.

다른 능력은 다소 뒤지지만 화술이 좋은 아이, 그림을 잘 그리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 무용을 잘하거나 주어진 글을 표로 잘 정리하는 아이처럼 어느 한 분야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을 쉽게 만난다. 아이들의 이러한 능력을 수업 시간에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면 아이들에게 행복한 수업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

교사 중심의 언어적 지능만을 강조하는 국어 수업에서 벗어나 텍스트의 글을 음악이나 연극으로, 혹은 그림이나 그래프로, 또는 만들기나 장르 바꾸기로, 때론 다양한 형태의 말하기 등으로 늘 부산한 수업을 진행했다. 졸기만 하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벌써 끝났어요?”, “국어 시간이 신나요.”라고 던진 말 한 마디, “선생님의 수업이 지루하지가 않아요. 선생님을 만나고 여러 면에서 국어의 매력을 느끼고 또 그 매력에 빠지며 국어에 대한 흥미도 생겼고 나름대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라는 이메일 한 통, 이보다 더 교사를 신명나게 하는 응원가가 또 있을까?

이제 3월이다. 따스한 햇볕과 바람이 닿는 곳에서는 벌써부터 자기만의 빛깔과 향기로 제 세상을 열어갈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의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갓 입학한 새내기들과 지난 1년 동안 한 뼘씩 자란 아이들이 다양한 빛으로 3월의 교정을 가득 채운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3월이 즐겁다. 또 다른 다희와 정훈을 만나러가는 이 3월이 행복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