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1분, 혹은 1분 30초마다 포즈를 바꿔가는 모델의 특징과 느낌을 재빠르게 잡아내 스케치북으로 옮기는 크로키(croquis)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크로키는 영어로 퀵 스케치(quick sketch), 즉 단시간 내에 빠르게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데 피부색과 곡선이 모두 다른 인체를 그리는 데는 고도의 테크닉과 순발력, 집중력이 요구된다.
대전시 중구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에 누드 크로키를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 ‘터’에는 20대 학생부터 전업주부, 의사, 공무원, 80살을 넘긴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매주 2시간씩 40~50장의 인체 그림을 그린다.
30초에서 2분 사이 정해진 시간 안에 모델들은 끊임없이 다른 동작을 취하고 모델 주위를 둥글게 자리 잡은 사람들은 짧은 시간 내에 모델과 작가 간의 느낌을 포착하고 인체의 형상을 캔버스에 옮긴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을 허벅지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은 모델을 한번 바라보고는 이내 스케치북과 화선지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선 제한시간 내에 문제를 풀어야하는 수험생들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드 크로키를 지도하는 화가 권숙정(대전드로잉회 회장)씨는 “짧은 시간에 모델과 작가 간의 느낌을 포착해 모델의 마음까지 담아내는 크로키는 작가와 모델과의 호흡이 생명”이라며 “치열하면서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순간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권 씨는 자신의 갤러리와 문화원, 평생학습센터 등에서도 크로키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업화가 뿐 아니라 취미로 크로키를 배우려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며 “모델과의 첫 대면에서 느낀 생생함과 개성들을 3분 안에 살려내는 게 크로키의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교수로 정년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상호 박사(81·대전시 서구 매노동)는 크로키의 매력에 대해 “2시간 동안 스케치북 한권 분량의 인체 그림을 그렸지만 같은 모습은 하나도 없다”며 “나이가 많다보니 빠른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데 어려움도 있지만 명암과 생략, 정제된 선들을 통해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묘미가 있다”고 들려줬다. /임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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