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임시정부 공무원 기념사진(1919년 10월). 앞줄 좌로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좌로부터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
이와함께 임정과 국민, 본국과 상하이를 연결하는‘특파원’이 운영된다. 특파원은 국내 잡입, 요인탈출, 독립자금모금 등을 주임무로 조직됐다. 이들은 첫 사업부터 대단한 성과를 거두는데 국내 비밀결사조직인 대동단 총재 김가진을 상해로 망명시킨다.
김가진은 공조판서와 농상공부대신, 중추원의장, 충청도관찰사 등 한말 고위직을 역임하고 일제에‘남작’작위를 받았던‘거물’이었다. 그는 아들과 1919년 10월 상하이 임시정부에 찾았고, 그의 망명사실은 가족들조차“신문기사를 보고 알았을 정도(정정화의 장강일기 中)”로 비밀리에 추진됐다.
김가진의 망명은 일제와 친일파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대내외에 큰 주목을 받게 된 쾌거였다. 일본 총독부는 김가진 며느리의 먼 친척을 동원해 귀국을 종용하는 역공작을 벌이지만 그는 임시정부에 체포돼 처형된다(장강일기 中).
▲ 상하이 임시정부가 특파원들에게 사용토록한 암호전보문. 한글을 기본으로 자음은 1~15까지. 모음은 16??25까지 숫자로 표기한다. |
임정 특파원 가운데는 아예 신분을 위장해 일본경찰에도 잡입하는데 대표적 케이스가 우강 최석순이다. 그는 안동에서 일본 경찰로 독립지사의 국내잠입과 국내에서의 탈출을 도왔다. 신분이 들통난 그는 가족과 상하이로 피신했는데 한때 위장신분인 일본경찰의 이력 때문에 밀정으로 몰려 곤혹을 치룬다. 그의 딸은 김원봉의 아내이다.
이들 특파원에게는 비밀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해 특별한 연락방법이 필요했다. 이때 개발된 것이 백반(白礬)편지. 한지에다 백반을 물에 개어 사용한 일종의 암호편지다. 무심결에 쳐다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불에 쪼이면 글씨가 뚜렷하게 살아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백반편지는 일본경찰에 발각되기가지 유용한 비밀통신 수단이었다.
이어 개발된 암호문은 끈 편지다. 한지를 길쭉하게 잘라 내용을 암호문으로 적고 그 종이를 노끈 꼬듯이 꼬아 각종 물건을 묶어 문서와 지령을 국내로 반입시켰다. 현대적 암호문 보다도 사용이 쉽고 들킬 위험이 적어 활용도가 높았다./상하이=맹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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