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옥]패러다임 시프트 시대의 한의학

[사이언스칼럼]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

세계 보건의료시장은 아스피린과 페니실린의 대중화, 수술요법 등의 발달이 이어지면서 100여 년 동안 서양의학이 강세를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이후 서양의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항생제 등의 ‘눈에 보이고 빠른’ 회복력 때문에 서양의학이 맹신에 이를 정도다.

▲ 김기옥 한국한의학연구원장

실제로 감기만 걸려도 병원을 찾는 사람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서양의학은 이처럼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부작용이 걱정될 정도로 국민보건의료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보건의료 환경이 변하면서 철옹성으로 보이던 서양의학도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병의 증세만 보고 치료하는 서양의학으로는 환경오염과 스트레스, 잘못된 식습관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생긴 현대인의 만성 질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상완화는 가능하지만 완치가 어려운 현대병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면 미래 세계 의료의 메가 트렌드는 어느 쪽으로 흐를까. 전문가들은 세계 보건의료에서 전통·보완대체의학(이하 전통의학)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전통의학 강국인 동북아 국가들 뿐만 아니라 서양의학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민의 50% 가까이가 전통의학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처럼 구미 선진국에서 전통의학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서양의학의 문제점 및 한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자연치료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닐까. 병의 증상만을 놓고 보는 의료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인 치유력과 전통의학의 자연친화적인 치료법이 최근의 웰빙 트렌드와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다. 이는 한의학의 기본적인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통의학이 주목 받으면서 시장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08년도 2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세계 전통의학시장은 2050년 쯤에는 5조 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질 전통의학시장을 놓고 전 세계는 물밑 전쟁 중이다. 전통의학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은 정부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중국의 전통의학인 중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하기 위한 중의과학원을 운영 중이다. 중의과학원은 침과 한약을 연구하는 13개 산하 연구소와 7개의 병원을 두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성에는 종합대학 규모의 중의약 대학이 산재해 있다. 중국은 중의학과 관련된 7개의 위원회를 가동하면서 자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각종 중의학과 관련된 표준을 세계 표준으로 삼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기도 하다.서양의학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도 전통의학 연구개발에 최근들어 지대하고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보건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NIH)의 대체의학 관련 예산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2.5배 늘었으며 2007년에는 3000억원을 넘어섰다. 또한 하버드대 의대 등 명문대에서도 전통의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94년에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설립된 이후 우리 고유의 의학인 한의학의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은 민족 고유의학 수준의 한의학에 대해 과학화, 표준화, 세계화를 수행하는 연구기관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는 그동안 침구(鍼灸)와, 한약, 진단, 문헌 등 한의학 각 분야의 연구를 통해, 침구경혈위치국제표준과 침의 국제표준 등 표준화 활동, 한의약 신약 물질개발, 각종 한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과학화, 한약재의 검증 등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아직도 앞서가는 전통의학 강국에 비해서는 예산이나 인력 등을 비교해 볼 때 미미한 수준이다.

바야흐로 지금은 발상의 전환, 즉 패러다임 쉬프트 시대다. 패러다임 쉬프트는 모든 분야를 휩쓸고 있다. 세계 보건의료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패러다임 쉬프트 시대에 수천년의 한의학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전통의학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