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갑]새 바지와 헌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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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갑]새 바지와 헌 바지

[월요아침]김홍갑 대전시 행정부시장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09 20면
  • 김홍갑 대전시 행정부시장김홍갑 대전시 행정부시장
옛날 중국 정나라에 복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복 씨는 자신이 입고 있던 바지가 더럽고 헤지자 새 옷감을 끊어다 아내에게 주며 새 바지를 지어 달라고 했다. 치수를 재며 아내가 물었다. “어떤 모양으로 지어 드릴까요?” 전에 입었던 바지가 편했다고 생각한 복 씨는 “예전 헌 바지 모양으로 해 주오”라고 대답했다.

▲ 김홍갑 대전시 행정부시장
▲ 김홍갑 대전시 행정부시장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곧이 곧대로 헌 바지의 모양을 본 떠서 헤어진 구멍도 몇 개 뚫고, 때 묻은 자국도 만들고, 쭈글쭈글하고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지극 정성으로 많은 공을 들인 바지가 완성되었다. 아내는 바지를 남편에게 가져다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맘에 드세요? 어때요, 헌 바지와 똑같지요?”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편에 나오는 우화 한 토막이다. 공직에 몸담으면서 정책을 기획하거나 입안할 때 이따금 이 우화를 떠올리곤 한다. 늘 국리민복의 명분을 전제하고는 있지만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한 채 낡은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관행과 전례의 익숙함에 젖어 되레 국민들에게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기 경계의 거울이자 성찰의 경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계화ㆍ정보화ㆍ민주화라는 거대 영향권 아래 나날이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공직사회는 제대로 발걸음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의식 전환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지만 여전히 공직사회는 고답적이며, 유습에 젖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변화의 트렌드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에는 공직사회에 대해 국민들은 직무의 안이함이나 규정만을 고집하는 업무 경직성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개개인의 자질이나 품성, 나아가 행정서비스의 전반을 아우르는 조직 시스템의 분위기를 언급하는 수준까지 확대되고 있다.

공직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바람 또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의 충실한 역할 뿐만 아니라 민의(民意)를 헤아리는 선도적인 공직자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마이클 해리 박사가 창안한 ‘식스 시그마’의 키워드를 빌려 말한다면 ‘열심히만 일하지 말고 똑똑하게 일하라’라는 것이다.

오늘날 중요한 화두로 거론되고 있는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는 앞으로 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적확(的確)하게 설명하고 있다. 1971년 앨빈 토플러가 쓴 ‘미래의 충격’이라는 저서에 등장한 프로슈머라는 용어는 생산자를 뜻하는 프로듀서(producer)와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의 합성어로, ‘생산자 같은 소비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해지고 수많은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서 민의는 행정이 펼쳐져야 할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재정의 투명성뿐만 아니라 정책의 입안과 추진, 그것을 수행하는 조직문화의 세세한 행위까지 투명하게 공개되어 국민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 안전할 권리, 의견을 반영할 권리 등을 충족시켜 나가는 것이 민선자치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공직사회가 더욱 역동적으로, 또한 능동적으로 자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이 정도쯤이면, 예전에 비한다면 좋아졌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다면 우리 사회의 변화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공공성에 입각한 권위를 가지되 권위주의를 탈피해야 하며, 민의를 아울러 나라를 경영한다는 뿌듯한 자긍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봄볕이 한결 따사로워진 3월이다. 겨우내 몸을 감쌌던 두꺼운 옷을 벗고 싱그러운 봄 분위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옷을 챙겨 입을 때가 왔다. 행여 새 옷을 챙겨 입는 마음가짐이 흉내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헌 옷을 걸치고 있으면서 새로운 옷을 입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비자의 ‘헌 바지’ 우화를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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