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적이고 핸섬한 마스크로 여성들을 설레게 하며 80년대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그는 온갖 불명예스런 소문 속에 팬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갔다.
약물 중독의 아내는 그의 이력에 흠을 냈고, 은막을 떠나 전향한 프로 복서 생활은 그의 얼굴을 짓이겨 놓았다. 링에서 입은 상처로 행한 성형수술의 부작용은 그를 나락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세월은 그를 상처투성이인 링에서 내려 보냈다.
80년대를 주름잡은 스타 레슬러 랜디. 2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식료품 상점에서 일하며 가끔 돈벌이를 위해 레슬링 시합에 나서기도 한다.
단골 술집의 스트리퍼 캐시디와 유일한 혈육인 딸 스테파니를 통해 평범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에게 더욱 큰 상처를 안겨주고,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그는 생애 최고의 매치를 위해 다시 링에 오른다.
매끈한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투박해 보이는 배우들의 모습과 화면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배우 미키 루크의 삶을 겹쳐서 본다면 왜 ‘신이 내린 연기’라는 호평을 듣는지, 왜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됐는지 감이 잡힌다.
도입부부터 카메라는 줄곧 미키 루크의 뒷모습을 좆는다. 그 어떤 애잔한 대사나 뜨거운 장면보다 힘없이 걷고 있는 쓸쓸한 그의 뒷모습만으로 가슴을 울린다.
시합도중 “야 이번에는 네가 때려”하고 귓속말을 주고받는 프로레슬링은 연출된 시합이다. 랜디는 적당히 할 수도 있고 원할 때 시합을 그만둘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그는 최선을 다한다. 여기서의 거짓은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연기이고 프로레슬러는 바로 배우이기 때문이다.
랜디는 필사적으로 레슬링을 연기하고, 미키 루크는 필사적으로 랜디를 연기한다.
‘더 레슬러’는 미키 루크가 배우로서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언제나 진심으로 연기를 하며 살아왔다고 항변하는 작품이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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