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운하 소설가 |
무엇보다 불안은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의 시간에 관련되어 있기에 더욱 추상적이다. 시간 속에 던져진 인간 실존에게서 나타나는 고유한 심리적 성질이다. 미래는 실체가 불명확한 유령 같은 존재다. 직선의 미로와도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간인 미래는 이미 흘러가버렸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심리적 상태를 야기시킨다.
미래는 욕망의 시간이다. 욕망되는 시간, 우리의 욕망이 뻗쳐 있고 욕망의 불가능한 대상들이 도사리고 있는 시간이다. 미래는 무한하지만, 동시에 죽음이라는 결말을 인식하고 있기에, 그 종말에 대한 불안은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불안을 형성한다. 무한과 유한의 대립 속의 근본불안.
그러나 미래라는 시간이 현대처럼 날카로워지는 이유는 현대인은 모두 “개인” 으로서 미래의 시간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각자 “홀로” 이 거대한 미래와 조우한다. 이것이 불안이라는 것이 지극히 근대적인 산물이며, 근대 세계의 개인주의와 맞물려 있는 이유이다.
이 현대세계는 실로 “역동적인 소용돌이” 가 휘몰아치는 도가니이다. 현대인은 미래라는 시간, 현대라는 이 공간의 거대함에 홀로 압도당해 짓눌리고 있는 것이다. 삶의 시공간 모든 것이 변화무쌍하고, 가변적이어서 홀로 적응하고 대적해 나가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지구적 차원의 거대한 천재지변, 세계 전쟁,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갑작스런 세계 경제 침체나 불경기, 파산, 실직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들, 하다못해 교통사고나 언제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를 강도나 살인범 같은 무시무시한 사건들 등등.
‘지구촌’ 시대의 개인적 삶이란, 온 지구의 근심걱정과 불안을 제각기 홀로 다 떠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야말로 거대한 삶이다. 때문에 이 거대한 세계는 나약한 개인들에겐 하나의 커다란 불안과 위험요인이 된다. 예측불가능한 위험들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하는 삶. 이런 세계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이것이 근대이래 인간을 불안 속에 던져놓는 삶의 조건이며, 철학자들로 하여금 불안에 주목하게 만들고, 정신분석학과 정신과에 환자들이 북적거리게 되는 원인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 불안을 치유하거나, 혹은 불안하지 않게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온갖 구체적인 걱정거리에 이처럼 모호한 불안마저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과연 어쩔 수 없는 우리 현대인의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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