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재술 한국교원대 총장 |
‘痴’를 해석해 보면 “아는 병”이 된다. 우리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한자의 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다는 말이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알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현대인의 지식은 우리를 똑똑하게 하는가 아니면 어리석게 하는가?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 살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미국의 월가의 전문가들 때문이라는 예기도 한다. 그들이 누구인가? 하버드 대학 등 세계 초일류 대학을 나오고 세계 경제를 손안에 두고 주무르던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앎이 병이 되어 지금 세계가 고통을 받고 있다.
또 월남전은 어떠했으며 최근의 이라크 전은 어떤가? 막강한 군사력과 정보수집 능력을 가진 미국이 십 수 년에 걸친 월남 전쟁에서 결국 패배한 것이나 이라크에서도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을지 몰라도 미국에 유익한 전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의 전략 전문가들의 학벌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그렇게 되었을까? 많은 지식이 있지만 그 지식이 진정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으로 승화되지 못한 지식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집안사람 중에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60이 넘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여 68세인 금년에 졸업을 한 분이 있다. 그 분이 통신고등학교에 다닐 때 필자에게 “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니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거기에 다 있더구먼!”하였다. 참 놀라운 말이었다. 인생을 다 살고 난 뒤에 보니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지혜가 이미 고등학교 책에 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고등학교 졸업으로는 부족하여 거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한다. 그래서 고졸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이다. 그 뿐이 아니다. 대학만 졸업해서는 회사에 가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다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대관절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이렇게 이르게 되었는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큰 사건들을 보자. 사기, 살인, 온갖 정치적인 비리 등 그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머리에 떠올려 보자.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분명 그들이 배운 것이 知가 아니라 痴가 아니었을까?
우리 교육의 문제가 가르치는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내용을 제대로 알게 만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옛날 서당에서 하는 공부를 주입식이라고 해서 매도하지만, 그 시대에는 하나를 배워도 철저하게 배웠다. 그렇게 철저히 배웠기 때문에, 배운 것이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무슨 일을 하든지 배운 것에 비추어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어려운 일에 처하거나 잘못된 유혹이 와도 배운 구절이 떠올라서 다시 돌이켜 바른 길로 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이 서당 글만 배우고도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식은 앎(知)이 아니라 어리석음(痴)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많은 내용을 가르치는 데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많은 잡다한 지식이 아니라 기초를 철저하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현재의 공교육 위기를 벗어나는 핵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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