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복 변호사 |
불씨는 위험하기도 하였다. 정월대보름의 쥐불놀이나 집 안팎의 허섭쓰레기를 모아 태운 끝에 남게 되는 잿더미 속의 작은 불씨가 끈덕지게 되살아나 헛간이나 심지어 초가삼간을 태우거나 산불로 번지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불씨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꺼트리어 식구들의 끼니를 제때에 차려주지 못하거나 군불을 지피지 못하여 헐벗은 식구들로 하여금 이불속에서조차 오들오들 떨게 만들기도 하고, 꺼진 불도 다시 보라는 경구를 한귀로 흘려듣고 소홀히 다루다가 큰 불로 번지어 낭패를 보는 수도 있었던 것이다.
기축 년 음력 정월, 죽음으로써 사랑의 불씨를 지피신 분이 계시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 영면하시면서 당신의 귀중한 두 눈의 각막을 기증하시어 앞 못 보던 두 맹인에게 광명을 주셨다. 추기경님의 선종에 대한 국민적 추모열기를 타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꺼져가던 장기기증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작은 불티가 바람을 타고 산불을 일으키어 사방팔방으로 번지듯이 그렇게 추기경님의 값진 베풂이 조용한 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구나 젊은 층이 더 앞장을 서고 있다니 매우 희망적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라는 뜻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함이 아니더라도 아무리 죽어서일망정 제 몸의 일부를 남에게 떼어 준다는 것이 어찌 쉬울 수가 있겠는가. 비록 화장을 당하여 한 줌의 가루로 바수어질망정 멀쩡하던 몸의 일부를 떼어내어 남에게 주고 불완전한 상태로 저승길로 향한다는 것은 마치 부관참시(剖棺斬屍)라도 당하듯 그다지 기껍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 폭압의 시대에는 인권의 수호자로서,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는 용서와 화해의 권고자로서 이 나라의 큰 스승이요 큰 어른이자 세상의 소금이시었다. 평생을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고 화해하라”며 예수의 사랑을 몸소 전파하고, 숨을 거두기 직전에는 “고맙습니다”라는 마지막 말씀으로 겸손을 가르치시었다. 언제나 자신을 ‘바보’라 칭하시며 낮은 데로 임하시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약자를 더 섬기시던 분이시다. 그리하여 당신의 귀한 두 눈을 어둠속에 헤매는 두 맹인에게 기꺼이 기증하시어 스스로 세상의 빛이 되셨다.
불씨란 참으로 예측불허의 존재이다. 어느새 지피어 모닥불이 되고 더 나아가 활활 타오르는 큰 불로 번지기도 하고, 시나브로 사위어 영영 되살아나지 못하고 꺼져 버리는 수도 있다. 장기기증의 움직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서로 사랑하자’는 진정어린 회한과 다짐, 매사에 감사하면서 세상을 올곧게 살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가짐, 기다랗게 늘어선 추기경님의 운구행렬이 단순한 장례의식의 행렬이 아니라 추기경님이 지피신 소중한 사랑의 불씨를 널리 오래 퍼지게 하는 사랑의 행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켜고 머리띠 둘러매고 구호를 외치다가 종국에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파괴적인 혁명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내미는 손에 손을 잡고 소리 없이 일어나는 평화로운 혁명을 진정 바라는 것이다. 추기경님이 남기신 사랑의 불씨가 당신의 운구행렬을 닮아 이어지고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면 이 사회, 이 나라의 장래는 밝고도 희망차다. “참아라, 고통에는 끝이 있다.”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견디거나 참기보다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찬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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