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우린들 그런 시절 없었나. 공원으로 변모한 한강변 난지도. 서울시민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청소차가 짐을 푼다. 개미떼처럼 몰려든다. 먹을거리와 돈 될 재활용품을 찾는다. 집은 근처 움막. 사라진 모습이다. 장터 꿀꿀이죽. 가마솥 걸어놓고 미군부대 잔반을 끓였다. 한 그릇에 오십 원이었던가. 소시지와 햄이 들어있으면 횡재. 지금은 존슨탕이나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생존 중이다. 긴 그림자 지닌 모습이다.
지구의 가난은 현재진행형. 한반도 북부에도 존재한다. 남쪽은 과거지사. 과연 그런가. 기초생활수급자 137만. 그 위 236만. 장애인 213만. 정부공식통계는 최소화법칙이 지배한다. 실제 어려운 계층은 7백만 명을 웃돌 터. 함께 사는 이웃모습이다.
실업자가 350만 명을 넘어섰다. 늘어날 뿐 줄 리야 없다. 아침에 아무 일 없는 듯 집 나선다. 갈 곳 없다. 공원체류족과 거리배회족 증가. 해가 지기 시작한다. 머뭇거리며 집으로 발길 돌린다. 뒤에서 얼핏 본 어깨. 축 쳐졌다. 과자 한 봉지 쥐지 못한 빈손. 언제 해고사실을 이실직고할까. 뭐라 직장 잃은 사연을 얘기할까 망설임에 젖었다. 가족이 기다리는 내 왕국으로 가는 아버지 모습이다.
전두환 정권 출범직후다. 공무원을 대거숙청. 다이얼 돌리는 역을 하게 됐다. 연결되면 차관이 통보. 업무지시로만 알았다. 느낌이 이상했다. 저승사자 하수인임을 직감. 본능이었다. 떨리기 시작했다. 번호구멍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동네에 산 직원이 있었다. 같이 출근했다. 이튿날이었다. 저 만치 떨어진 곳에 있었다. 손가방 든 채 숨듯이 서 있었다. 한 달 가량 계속됐다. 어떤 이유건 목 자르기는 대죄임을 절감했다. 다가갔다. 잔상이 남아 있다. 골목으로 피하던 모습이다.
개인사는 사람수효만큼 다양하다. 볕드는 날은 며칠이나 될까. 순풍에 순항했다고 호언장담하는 일수는 얼마일까. 비바람과 눈보라 속 비틀거림이 더 많으리라. 역풍으로 뒷걸음치기 일쑤이리라. 그러면서도 타자의 고난을 외면한다. 일상의 내 모습이다.
잘 나간다고 앞쪽만 신경 쓴다. 고치고 화장한다. 그러다가 만인 공통의 붉은 신호등에 걸린다. 그제야 무관심했던 뒤쪽을 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드러난다. 끝내 기름기 번들거리는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진다. 욕심 채우기로 일관한 나날의 모습이다.
어깨에 힘들어가 있을 때 원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주머니에 명함이 있을 때 지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도 생로병사. 권력과 지위와 명예와 재산도 흥망성쇠. 왜 생(生)이 먼저고 사(死)가 나중인가. 어이하여 흥(興)이 앞에 오고 망(亡)이 뒤에 오는가. 쥐고 있을 때 잘 하는 뜻 아니겠는가.
요즘 거개가 어렵다. 임금 동결과 삭감에 쪼들린다. 아껴서 모으기는커녕 빚 얻는다. 일터 놓치지 않으려고 바동바동. 불안안고 산다. 그래서 나누고 도와야 하지 않을까. 인생일지에 이렇게 쓰는 인생은 어떨까. 앞모습은 온후했노라. 뒷모습은 후덕했노라고. 앞뒤 같은 모습이 좋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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