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90주년을 맞아 김구재단(이사장 김호연)과 공동으로 항일운동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역사학계가 임정수립기념일 변경을 수년째 요청하는데도 정부가 이를 미적거리며 고치지 않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수립됐지만 1989년 국가기념일로 승격돼 이듬해부터 국가가 행사를 주관하면서 고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4월13일로 정해 버렸다. 현재 백과사전은 물론 국사교과서에서도 오류를 빚고 있다.
독립운동대표들은 1919년 3.1독립선언으로 임시정부가 필요하자 이해 4월 10일 오후 10시 29명이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지에 모인다. 이들은 임시의정원(의장 이동녕)을 개원하고 조소앙 선생 등이 기초한 임시헌장을 심의해 11일 오전 신석우 선생의 제청으로 국호를‘대한민국’으로 하고 이승만 국무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절충식내각제의 국무원 체제 헌장(헌법)을 제정, 공포했다. 이어 13일에는 대내외에 선포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수립을 선언하고 국호와 직제를 제정한 11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근현대사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특히 임시정부는 4월11일을 임정수립일로 기념해왔다.
단국대 한시준 교수는“임정의 각종 자료와 당시 언론보도 등을 검토한 결과 임정수립일은 4월11일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며“역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기념일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연구원들도“정확한 임시정부 수립일을 정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측면에서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며 기념일 변경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한 교수가 공개한 김구 주도의 한국국민당 기관지‘한민(韓民)’과 임시의정원 속기록 등 각종 자료에서는 매년 4월11일 임정수립일 기념식을 치렀던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 해방후 처음 치뤄지 제28주년 대한민국 임시입헌기념식. 행사일이 4월11일로 기록돼 있다. |
1938년 4월 3일자 한민에는‘4월 11일 임시정부가 기념식을 거행한다’는 예고 기사가 실렸으며, 4월 30일자에서는‘4월11일은 임시정부 성립 제19회 기념일로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1945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 속기록에도‘(이날은)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 성립 제26주년 기념일이므로 의회 개원식과 성립 기념식을 합병 거행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1946년 광복 이후 국내에서 처음 국내에서 치뤄진 대한민국임시입법기념식 기념사진에도 4월11일을 기념일로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중국에서 발행된‘대공보’(1942년 4월 11일),‘신화일보’(1942년 4월 11일),‘중앙일보’(1943년 4월 12일) 등에서도 임정수립기념일을 4월11일로 기사화해 임시정부가 이날을 공식기념일로 외국 기관등에 통보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하지만, 임정수립일을 국가기념일로 주관해온 국가보훈처는 학술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기념일변경 필요성은 인정하면서“시간을 두고 신중히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만 내세워 이를 변경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4월11일을 임정수립일로 보는 많은 근거가 제시된 것은 사실이지만 4월13일로 보는 역사학자도 있다”며“논란을 피하기 위해 역사학계가 모두 인정할때까지 기념일을 그대로 운영키로 했다”고 말했다. /상하이=맹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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