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
학업성취도 조사의 허실
그러나 국민들은 생각한다. 상식적으로 한 학교나 지역 안에는 지적 역량을 가진 학생도 있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며, 언어나 사회 영역에는 소질이 있어도 과학이나 수학 쪽에는 역량이 떨어지는 학생도 있을 터이며, 또한 질병이나 가사(家事)로 부득이 학업을 성취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기 마련인데 어떻게 한 교육청 안의 수많은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전 과목에서 낙오자 하나 없이 학업 성취를 이룬다는 말인가? 이는 애초에 교육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공식이었다.
결과적으로, 관할 교육청이 학업성취도를 부풀린 것으로 드러나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여건과 연쇄살인 사건 등으로 상심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또 한 번의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교육이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해 사람이 사는 도리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지 모두 우등생을 만든다거나 저능아를 영재(英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실수이든 의도적이든 간에 일제고사 성적을 부풀린 교육청이 임실 한 곳 뿐이 아니라니 우리의 교육 현실이 참담하기 짝이 없다.
“임실, 학력미달 학생 한 명도 없어!”라는 보도에 고무된 관계 당국이, 앞으로는 학업 성취도 달성 여부에 따라 교원 인사를 단행하겠다며 일선 교직원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등의 행위는 성적조작 여부와 관계없이 교육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처사이다. 잔디를 깎거나 감자를 고르듯 천편일률적으로 열등생을 없애고 우수 인재를 만들어내겠다는 발상이 우리 교육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며 ‘교육평준화’라는 우상을 만들지 않았는가.
시정해야 할 평준화 정책
두뇌가 우수한 학생이든 상대적으로 학업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든 자신에게 알맞은 학교를 선택해서 진학하게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거늘 제비뽑기를 해서 학생을 배정하고 인위적으로 학교의 우열을 없애버린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교육을 퇴보시키고 우수한 학생들이 설 자리를 없애버린 어리석은 정책이었다. 세월이 얼마쯤 지나고 보니 평준화된 학교 중에서도 자연스레 우수한 학교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와 신앙에 따라 학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 권리인데 불교 종단 종사자가 기독교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하고 기독교 성직자가 불교 재단이 설립한 학교에 자녀를 보내야 하니 이런 불합리한 처사가 또 있을까? 따지고 보면 이것은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우리의 헌법과도 위배되는 것이다.
필자는 제도화된 ‘고교등급제’는 반대하지만 대학수학능력고사를 치르지 않고 학생을 선발하는 수시모집에서는 대학에게 면접이나 다른 수단을 통해 고등학교별 학업 성취도를 어느 정도는 고려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
필자가 교무처장직을 맡고 있던 8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ㅍ’지방의 모 종합고등학교에서 석차 1등을 한 학생이 서울의 ‘ㅈ’여자고등학교에서 52명 중 51등을 한 학생보다 학력고사(당시) 성적이 낮았다. 교육당국은 이런 경우의 선택권까지 간섭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학업성취도에 매달린 학교들이나 가고 싶은 학교를 이웃에 두고도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원치 않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 학생들은 획일적 교육청책의 희생자들일 것이다. 드러난 문제점부터 하나하나 개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