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가들에게 적당한 장소를 일정기간 제공해주고 거주하는 동안 창작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게 된다. 주로 국가(공공기관) 차원이나 민간재단, 기업차원이 지원의 주체가 되며, 비영리적으로 미술의 경쟁력을 도모하는 작가육성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배출된 작가들이 미술의 여러 영역에서 주목을 받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치열하다. 경제여건이 어려운 작가들이나 신진작가들은 각 지역에서 공모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찾아 경쟁의 대열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아는 지인이 타 지역(광주)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1년간의 장기지원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작업공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전시도 지원해주는 등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정된 기쁨도 잠시, 지인은 타 지역에서의 하루하루가 막막하다는 하소연을 하였다. 창작의 터전을 떠나 삶의 방식과 작업의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들에게 작업장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의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작가에게 있어 기본시설을 완비해놓고 자유롭게 작업을 펼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공간에서 일정기간을 지내며 자신의 모든 창작역량을 생산해내면, 그동안 진행된 작업과정들을 포함한 작품들이 전시로, 출판물 등으로 지원된다는 것은 대단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이 결과가 성공적인 작가는 다양한 가능성을 검증받은 신인 작가로서 여러 무대에 올려져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기회를 갖고 싶어 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작가도 창작인 이전에 다른 어느 사회인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생활인이라는 사실이다. 창작의 둥지를 새롭게 제공받으려면 그동안의 생활근거와 활동기반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데 창작의 정신이 자유롭다고 몸까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창작의 공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의 자기지역 중심주의 때문에 실력 있는 작가들이 결국 지역을 떠나야하는 상황에서 드는 의구심은 도대체 대전에는 왜 이런 작가지원 프로그램이 없냐는 것이다. 대전이란 지자체의 규모와 역량보다도 작은 지역에서도 운영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작가의 정체성을 성장시킨 지역을 떠나, 즉 작가적 삶의 근간을 벗어나 타 지역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즐거운 비명을 지를 일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굳이 타 지역까지 선택하며 창작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작가의 고충을 이 사회는 어떤 식으로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지역의 작가를 지원하고 생산해낼 물적 기반을 마련하지 않은 대전은 지역에서 성장한 실력 있는 인적 자산들을 타 지역으로 흘려 내보내고 있다. 어떤 이는 대전은 스쳐지나가는 ‘터미널’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착할 수가 없어, 다른 기회를 기다리다 버스가 오면 떠나는 터미널 같다는 것이다. 물론 대전에도 지난해 오픈한 창작지원센터가 있다. 하지만 주로 전시형태로 운영되기에 대전시립미술관의 별관으로서 그 이상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다.
공간만을 의식하는 경직된 지원책을 떠나,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대전작가들의 창작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의 건강한 운영방향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부터 작가들이 안정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작업을 한 적이 있었는가 묻기 이전에, 또한 작업에 대한 그들의 안일함을 탓하기에 앞서 그들이 지닌 예술의지가 이 지역에 새로운 문화지형을 생성할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제도를 대전도 이제 확보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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