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중암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던 영규대사의 우국충절이 깃든 호국도량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1932년 화재로 대웅전 등이 소실되고 해방 후 많은 사료를 잃어 전통사찰 지정을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주던 곳이다.
경허스님이 중암사에 머물며 법문했다는 기록은 ‘경허법어’에 나오는데 김경자(정생보건진료소장)씨 등 이 절 신도들이 전국의 도서관과 대학을 수소문해 수집한 자료를 23일 공개했다.
김 씨가 공개한 자료는 16국사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해 삼보사찰 가운데 승보종찰로 유명한 송광사에서 발행한 불기 2533년(1989년) 7월 1일자 불일회보(佛日會報)로 1면 전체를 할애해 ‘크게 웃고 일어난다’는 주제의 경허스님 법문을 싣고 있다.
이 법문 중간부분에는 “모든 법이 또한 일찍이 하나가 아니다. 1과 2를 그 누가 능히 이름하며, 그 이름할 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것은 도리어 천비산 중암(中庵·충남 대덕군 산내면 묘각사) 아래로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중암사는 창건당시 미륵사(彌勒寺)라고 했던 것을 그 뒤 묘각사(妙覺寺)라고 고쳐 부르다 현재의 중암사(中庵寺)가 되었다.
김 씨는 “불교 법회에서 흔히 법사가 법어를 하면서 현재의 절을 빗대 말하는 것이 정설인데 경허스님의 이 법문은 바로 중암사를 가리키는 것”이라며 “중암사 부도탑에서 조선시대 고승들의 면모를 볼 수 있듯 불일회보에 실린 경허선사의 법문을 통해 중암사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암사 주지 철린 스님은 “천비산(天庇山) 중턱에 위치한 중암사는 비래사, 고산사와 더불어 대전에서는 가장 오래된 절로 신라 문성왕 14년(서기 852년) 무염(無染)스님이 창건한 호국도량”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사재동 백제불교문화대학장(충남대 명예교수)은 “경허선사가 중암사에서 법문을 했다는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불교의 호국애민을 보여준 중암사의 전통사찰 지정과 예전의 가람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평가했다./임연희 기자 lyh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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