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한 신앙인의 떠남, 그리고 우리의 역사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송전]한 신앙인의 떠남, 그리고 우리의 역사

[문화초대석]송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장/대전연극협회장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2-23 20면
  • 송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장송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장
한국 현대사의 또렷한 증인이자 양심의 지킴이 그리고 예언자 역할까지 두루 역할을 담당했던 어른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났다. 70년대 유신시절을 대학가에서 보냈던 필자 역시 그 분의 음성을 또렷이 기억한다. 1972년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유신헌법 제정을 발표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음성은 그 해 겨울을 한층 춥게 만들었었다.

▲ 송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장/대전연극협회장
▲ 송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장/대전연극협회장
그땐 겨울이 왜 그리 추웠는지. 그 이후 성탄절이 될 때면 자유를 목말라하던 이들은 명동 성탄 미사를 직접 찾아 미사를 통해 들려지는 한 사제의 어눌한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매스컴은 짤막한 단신으로 그의 메시지를 요약했다. 그 목소리와 짧은 몇 줄의 문구는 동시대인의 막막한 가슴에 희망의 숨결로 스며들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였다. 아마 우리나라 7080 세대가 공유할 귀한 체험일 터이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언어는 격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언어를 숨죽여 기다렸다. 그가 차지한 카톨릭 교계의 위치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충분히 존경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차지한 위치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으로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꼭 말해야 할 것을 분명히 말했다. 그 언어가 오늘날 이 정도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우리 현대사의 징검다리였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사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카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천년은 특이한 역사시대였다. 신앙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되기도 했다. 우상과 미신이 횡행했고 신의 이름을 빌어 종교재판을 벌이고, 마녀사냥을 일으켰다. 11세기에서 13세가까지의 200년에 거친 아랍세계에 대한 유럽인들의 십자군 원정은 교황들의 정치적 욕망과 어우러져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 당시 200만명의 인명 손실을 가져왔다.

당시를 배경으로 한 세계 명작 <현인 나탄>(레싱)에서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기독교도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한 갓 난 여아가 한 어진 유대인에 의해 받아들여져 훌륭히 양육 성장된 것을 알고, 이 유대인이 배교를 유도했기에 화형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게 영원히 타락되느니 차라리 죽었어야 한다는 모진 말을 내뱉는다. 전 교황 바오로 2세는 그때의 오류를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 역사는 또 달리 특이하다. 중국을 통한 카톨릭 포교는 우리 역사에서 근대의 시작(실학)이었고 조선말 일제 초기의 프로테스탄트의 포교는 신교육의 시작이었다. 세계 유래 없는 초고속 산업화와 현대화 그리고 민주화 성공의 상당 몫은 한국 기독교에 둘 수 있을 듯하다. 강남의 유자가 강북에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기독교가 우리 역사 흐름의 와중에 중인 이하의 계층과 만난 것이 그 이유였을까?

종교적 종파를 넘어 존경을 받던 추기경의 서거는 어쩌면 한 시대의 마무리일지 모른다. 요즘 뉴 라이트니 뭐니 하며 정당과 구분이 안 되는 집단 안에 있는 자칭 신앙인들의 외침은 그의 목소리에 비할 때 많이 거슬린다. 신앙인의 목소리는 역시 눌린 자들을 위한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5.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