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석희 한국주택금융공사 대전ㆍ충남지사장 |
우리는 당시 그 대가로, 빌려 준 돈은 몽땅 떼인 채, 금 모으기 운동까지 펼치며 국제통화기금의 돈을 빌어 선진국 채권자의 빚을 모두 변제했으며 이후 만성적인 구조조정 위협에 시달려 가며 국제통화기금의 돈도 다 갚았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우리의 외환위기로 아무런 피해나 영향도 받지 않고 수년간 우리의 금융 재정과 산업정책을 통제했다.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뒤흔들며 실물경제를 오그라들게 하는 전대미문의 지금 사태는 지난 2006년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즉 비우량 주택대출의 부실 문제가 2007년 6월의 대형 투자은행 베어스턴스 파문을 거쳐 2008년 9월 미국 4대 투자은행인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비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요컨대, 미국발 주택금융위기가 지구 경제를 덮친 형국인 것이다.
사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2005년에 활발하게 제기된 미국 주택금융시장의 위험에 대한 경고와 정부후원 주택금융기관이 야기할 체계적 위험에 관한 연방준비제도 등의 지속적인 연구와 지적,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 다듬어진 미국의 금융제도와 감독체계를 감안할 때,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위험의 본질이 부적응에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은 2000년대 초에 이미 가계대출의 연착륙 문제를 금융정책의 우선과제로 설정하고 한국주택금융공사를 설립해 장기 고정금리 분할상환 방식의 주택대출 공급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주택가격대비 대출금액비율을 최대 60%에서 70%로 묶고 주택경기가 과열되는 지역에 대해서는 이를 40%까지 제한하는 금융감독을 시행했다.
미국과 대비되는 이러한 일련의 주택금융정책들을 일관되게 추진한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금융체제에 상대적인 안정을 가져다 준 기반됐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언짢음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10여년전 우리에게 문제가 있었을 때, 우리는 이리저리 시달리며 허리띠를 졸라 맸고 나라 밖은 아무런 손해도 파장도 입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미국에 비해 모범적으로 주택금융을 비롯한 금융체제의 건전성을 유지해 왔음에도 대외여건의 악화에 따른 금융시장의 동요와 그에 따른 실물경제의 위축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 내지 불공평은 우리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나라라면 마찬가지로 주어지는 숙명같은 것이다. 지금의 개방경제를 1980년대 이전의 폐쇄, 허가, 금지의 경제로 돌릴 수도, 돌릴 이유도 없으므로 이러한 처지에서 벗어날 방법은 소규모경제를 대규모로 키우는 길밖에 없다.
얼마전 신년특집 경제위기관련 대담방송에서 사회를 본 정운찬 전 서울대학교 총장은 말미에 논의를 정리하며 인구가 5천만을 넘으면서 1인당 소득이 2만불을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빼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의 다섯 나라밖에 없다고 상기시키면서 주눅 들지 않는 경제주체들의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규모 개방경제는 우리가 가야 하고 갈 수 있는 길임을 시사해 주는 언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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