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데로 향한 걸음 중심엔 언제나 '인간존중'

  • 사회/교육
  • 미담

낮은데로 향한 걸음 중심엔 언제나 '인간존중'

10년전 중도일보 대담서 새천년 방향제시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2-20 3면
  • 한성일.사진=김상구 기자한성일.사진=김상구 기자
김수환, 가난하고 어두웠던 시절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했다. 흐르는 물처럼 낮은데로 낮은데로 향하는 그의 걸음에 위안을 얻고, 한줄기 희망을 읽었다.

10년 전인 1999년 9월 1일자 중도일보 5면(지령 제10441호). 언론에 비치는 것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던 김수환 추기경은 그날 대담에서 새로운 천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 그 중심엔 자기반성, 약자에 대한 배려, 북한동포 돕기 등 평생 화두로 삼았던 인간 존중 정신이 오롯이 담겨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변평섭 당시 중도일보 주필(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면에 담는다. <편집자주>


<새천년 그리고 자기 반성>

새천년은 우선 소중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한해 한해를 맞이하는 데도 그것이 나에게 새로운 참된 출발을 하게 하는 새날 새해라 인식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는다면 그날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하루, 새날을 값지게 살아야한다는 다짐을 더 깊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있는 새천년은 그런 의미에서 더 엄숙함과 의미를 새기면서 장엄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깊은 반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외침 아래 나라의 자립도 빼앗기고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억압된 식민통치 아래 살다가 해방됐습니다.그러나 해방의 의미도 잠시이고 분단된 조국의 슬픔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6.25 동란으로 진화의 어려움은 컸습니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고 부존자원은 없고....우리에게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자신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러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이만큼 발전을 이룩했고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발전속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큰 손실도 입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존중’보다 ‘물질 위주’의 가치관으로 변질됐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것은 좋은데 황금만능주의가 퍼져 정직과 성실을 잃었습니다. 그 부작용으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인권유린사태도 발생했습니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그에 따라 부끄러운 사고도 많이 발생했지요. 이런 상태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고통을 나눌 줄 알아야 행복>

어느 부잣집이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간에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줄 모르고 서로 무시할 경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대로 그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못한 평범한 가정이라 하더라도 가족간에 서로 소중히 여기고 서로가 서로를 위할줄 알고 고통을 나눌줄 알때 그 집에는 분명히 행복이 있고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발전과 과학발전을 통해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 2만달러가 됐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만일 인간이 빠지면, 인간을 소홀히 대접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경제발전이나 과학발전속에 인간이 빠지면 그것은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희생시켜 가면서 과학(복제인간)이 발전할 경우 얼마나 불행을 가져올 것인가는 뻔히 내다보입니다. 이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인간에게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으로 향한 애정>

가톨릭교회에서 국내 입양을 위한 집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집에는 팔 다리가 없는 ‘구원’이란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장애아였습니다. 누가 입양해 갈 것인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청주에 있는 신자중 한 사람이 입양해 갔습니다. 몇년이 지난뒤 아이를 데리고 찾아왔는데 그 사람들이 아주 감명 깊은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이를 통해 정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입는 것 같습니다”고 말하더군요.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척해서는 절대로 우리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들이 대접받을때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행복을 누릴 수 있거든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인간을 소중히 하고 인간을 위하고 사랑할줄 알야야 합니다.

<북한동포는 같은 핏줄>

북한동포도 우리의 동포입니다. 지금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같은 핏줄이기에, 동포이기에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가 붙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북한이 우리가 도움의 노력을 하는데도 여전히 도전적이고 (우리를)적대시하고 잠수함도 내려보내고 금강산 여행객도 잡아놓는 등으로 여론이 나빠져 ‘왜 그들을 돕는가’하는 지적도 심정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한다해서 도움의 손을 끊는다는 것은 그들을 영원히 우리의 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냉정히 생각해야 합니다. 똑같이 미워하고 배척하면 우리와 그들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어려움을 도우려고 할때 진심은 전달될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최근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의 한 처녀가 마라톤에서 1위를 할때 우리 국민들은 모두 즐거워했습니다. 같은 동족이라는 의식때문이지요. 굶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정으로 도와야 합니다.

<개혁 중심에 국민이 있어야>

최근 개혁때문에 정부도 진통을 겪고 있는데 하여튼 진통을 겪더라도 개혁은 진행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재벌)기업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을 해왔고 또 고맙지만 (이들이) 국민의 기업이란 인식이 돼 있지 않은게 문제입니다.

국민 모두가 참여하고 인정하고 열린기업으로 개혁돼야 합니다. 그러나 기업을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을 너무 코너로 모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대국적으로 개혁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기업이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고 또 국민을 위하는 열린 기업으로 개혁될때 그 기업은 21세기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분야가 개혁돼야 합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을 위한 정당이 돼야 합니다. 자신들을 위한 정당이 돼서는 안됩니다. 현재로서는 뭘하는지. 개혁을 하는지,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알 수가 없는. 끼리끼리 몫을 나눠먹는 형상이라 안타깝습니다.

<장면박사와 그리고 제2공화국>

신부가 되기 직전인 가톨릭대학 학생때 장면 박사 그분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분은 한마디로 인품이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장면 박사는 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1948년 12월에 유엔합법정부 승인을 받을때 백방으로 뛰어 한국의 유엔 가입을 이끌어냈지요. 6.25 사변이 발생했을때도 장면 박사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세계 16개국이 유엔군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를 도우러 오도록 외교력을 동원한 거도 장 박사의 고군분투로 이뤄졌지요. 그때 유엔군이 오지 않았다면 오늘이 없지요. 모두 공산화됐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 중도일보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 조국을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종교인의 길>

종교인으로서 특정종교를 거명할 필요는 없지만 종교가 제구실을 하고 있느냐 할때 실제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고 또 각 종교가 나름대로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종교를 위한 종교냐 아니면 사회를 위해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사랑의 삶을 살고 있는 종교냐를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온세계를 위한 종교로 변모돼야 합니다. 거기에는 자성이 있고 자기 혁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1.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2.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3.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4.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5.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헤드라인 뉴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내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 학교 지원 항목 추가… 교원 생존수영 업무에서 손 뗀다

교원들의 골머리를 썩이던 생존 수영 관련 업무가 내년부터 대전 동·서부 학교지원센터로 완전 이관된다. 추가로 교과서 배부, 교내 특별실 재배치 등의 업무도 이관돼 교원들이 학기초에 겪는 업무 부담은 일부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2025년부터 동·서부교육청 학교지원센터(이하 센터)가 기존 지원항목 중 5개 항목의 지원범위를 확대하고 학교에서 맡던 업무 4개를 추가로 지원한다. 먼저 센터 지원항목 중 교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생존 수영 관련 업무는 내년부터 교사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게 된다. 현재 센터에..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기획] 대전, 트램부터 신교통수단까지… 도시균형발전 초석

대전시가 충청권 메가시티 완성의 시작점인 광역교통망 구축에 힘을 쏟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부터 신교통수단 시범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도시균형발전 초석을 다지는 것을 넘어 충청 광역 교통망의 거점 도시가 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8년 만에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이 올해 연말 착공한다. 도시철도 2호선은 과거 1995년 계획을 시작으로 96년 건설교통부 기본계획 승인을 받으면서 추진 됐다. 이후 2012년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됐지만 자기부상열차에서 트램으로 계획이 변경되면..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대전 유통업계가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겨울철 대목을 노리고 있다. 우선 대전신세계 Art&Science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26일 백화점 1층 중앙보이드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보였다. 크리스마스 연출은 '조이 에브리웨어(Joy Everywhere)'를 테마로 조성했으며, 크리스마스트리 외에도 건물 외관 역시 크리스마스 조명과 미디어 파사드를 준비해 백화점을 찾은 고객이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전 신세계는 12월 24일까지 매일 선물이 쏟아지는 '어드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 시민의 안전 책임질 ‘제설 준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