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상(賞) 같지 않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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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상(賞) 같지 않은 상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2-20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미덕의 하녀들’― 옛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제정한 상. 성적(性的) 유혹에 꺾이지 않은 여성에게 주는 훈장이었다. 그 기준이 막연하자 그러한 행실이 소문으로라도 알려져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성적 유혹과 소문이라는 실용적인 관점은 약간 확보됐지만 엄밀성에서는 허술했다. 하지만….


그 상은 보름날 개밥 퍼주듯 퍼주는 상보다야 덜 어이없다는 생각이다. 아산 한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테니스협회장상, 우체국장상, 자율방범대장상까지 등장했다. 짓다 못해 개인성장상, 학급활동상, 생활습관모범상 등 세분화한 이름들이 나왔다. 10장씩 상을 챙기는 학생, 졸업생 477명에 수상자 665명인 학교도 있다. 그러고도 천재와 둔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우긴다니 교육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나 동의할 수 없다.

거칠게 표현하면 상은 휴지 조각에 가까웠다. 대전시의회 의원이 졸업식 상장을 수여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졸업식장은 지역구 관리 장소로는 제격이다. 이래저래 상은 공신력을 잃고, 학부모 입에서는 기어이 “단지 종이 상장에 불과한…”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말았다. 상장을 쓰레기통에 쑤셔박는 수상자도 있었다. 멋쩍지만, 필자 중학 시절 1328 대 1의 경쟁을 뚫고 받은 저 상에서 맛보던 자극이나 아무런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37년 전의 저 상 아니었으면 지금쯤 대포동 미사일에 맞설 미사일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때 부상으로 받은 사전을 너덜거리도록 읽고 외웠다. 수상의 기쁨엔 볼펜 한 자루라도 부상의 설렘이 부가돼야 한다. 상(賞) 밑엔 ‘조개 패’다. 조개는 돈이다. 무역(貿易), 매매(賣買), 저축(貯蓄), 배상(賠償) 등을 보아도 재물에 ‘조개’가 들어간다. 조개[貝]가 나눠지면[分] 가난한[貧] 것이다.

‘패(貝)’는 마노조개의 형상을 본뜬 글자다. 쇠붙이 화폐 이전의 조개껍데기는 화폐로 통용됐다. 어떤 글들로 내가 상금 수백 만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그 달콤한 ‘조개’ 부분까지 상의 가치에 보태줬다. 대전시문화상과 각 시·군 문화상 지원자가 현저히 줄어든 시점은 다른 구린 요인말고도 상금이 사라지면서부터다. 공직선거법을 들이대고 점잔 빼지만 가장 좋은 시상 제도 개선이란 강력한 인센티브 부여다.

노벨상의 고액 상금이 순수성을 침노하지 못한다. 돌려 받기, 상의 남발, 부상 부재가 심드렁하게 단상에 오르고 하릴없이 박수만 쳐대는 무감동의 시상식을 양산해 낸다. 실제로 졸업한 아이가 받은 상을 들춰보니 실소가 나온다. 족보 한 장 잘 베껴 받은 효의 상, 책 많다고 번쩍 손들어 받은 독서왕상, 은선폭포에서 놀다가 찍은 사진 제출했다가 받은 체력상은 양반이다. 터무니없는 상들로 인해 우연을 필연으로, 행운을 능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만 바라야 했다.

희소성은 공정성, 객관성과 나란히 상의 권위와 직결된다.
억만재(億萬齋)라는 서재로 유명한 김득신이 노둔함을 이기려고 억만 번에 이르도록 읽은 것과 같은 노력의 산물이면서 건강한 영양소, 큰 꿈을 이루는 활력소 같아야 한다. 발군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에릭 하이든이 있었다. 선수들이 앞다퉈 그와 경기하길 원했는데, 금메달은 놓쳐도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기 때문이다. 하이든 효과다. 격려, 분발, 자극과 이유, 목적, 권위를 잃은 상은 당장 없어져도 섭섭잖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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