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질하기 전에 먼저 그 집에 숨어들어 댓돌 위의 신발을 보라 했다. 신발이 가지런하면 집안 구성원 마음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으니 들어가봐야 들킨다. 나라 살림도 매일반이다. 기강이 흐트러지면 관리 스스로 갓 쓴 도둑이나 다름없다. 도씨전 속설이 출처(出處)다.
출처를 연구하다 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 고구려에서 장관에게 붙인 형(兄)도 그렇다. 장관이 대형(大兄), 차관이 소형(小兄), 총리가 태대형(太大兄)이니 큰형, 작은형, 큰큰형이었던 셈. ‘형’이나 ‘언니’ 호칭은 동(洞)주민센터에 가도 들을 수 있다. 공무원끼리 부르고 곰살맞은 민원인도 그리 부른다. 그런데 그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법원에서 6급 이하 대외직명을 만든 동기가 직원에게 “형”, “언니”, “아가씨”, “아저씨”로 부르는 걸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6, 7급은 참여관, 등기관, 조사관, 상담관, 행정관으로 하고 8, 9급은 실무관으로 하자는 취지는 알겠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민원인의 머리는 더 복잡하다.
대외직명은 행정기관 간에도 들쑥날쑥, 따로국밥이다. 도청 5급이 계장, 담당, 담당사무관, 팀장 등으로 불린다. 서울시는 6급에 주임, 7급에 주무를 쓴다. 전북도청은 6급 이하를 주무관이라 했다. 광주광역시는 6급을 주무관, 7급을 실무관으로 부른다. 담당과 팀장은 뭐고, 사무장과 주무는 누구이며, 계장 밑에 웬 부장과 차장인지 모르겠다. 이런 혼선이 없다. 7∼9급 공식직함인 주사보, 서기, 서기보가 잘못이라면 아예 이걸 고치지 그런가.
그리고 고치려면 ‘고시 출신’, ‘○급 출신’ 등 무슨 골품제처럼 신분을 한정하는 집단주의부터 고쳐야겠고, ‘관(官)’과 ‘이(吏)’가 이방과 사또처럼 인식되는 관행도 고쳐야겠다. 옛날엔 박사(6급), 직장(7급), 정사(8급), 참봉(9급) 따위로 불리고도 벼슬로 알았다. 서기를 서기로, 주사를 주사로 못 부를진대 이는 죽은 직명이다. 대외직명 붙이기가 처우 개선이라면 할말 없지만 ‘이름 좋은 하눌타리’ 같다면 금박명함도 허함(虛啣)에 지나지 않는다.
공무원 이름에 파워(사기?)와 향기(자긍심?)를 싣기 위해 충북도에서도 대외직명에 대한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하겠다 한다. 이름으로 승부하지 말고 조직의 효율성과 위기관리능력 향상을 통해 이름을 바로 세울 궁리를 하라면 꽁생원, 좀생원 같은 소리인가. 직명을 바꿔도 바뀐 그 이름이 “형”, “언니”만 못할 수도 있다. ‘출’과 ‘처’, ‘출처’를 분명히 하라는 선의의 충고로 듣기 바란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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