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마다 영국에서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에 대단히 애착을 가진 본인으로서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여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 권율정 대전지방보훈청장 |
그녀가 왕위에 오른 시점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지 불과 7년도 채 되지 않던 시기이며, 이때 우리는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서 지루하게 휴전협정을 밀고 당기던 시기였다.
그녀의 전임이자 부왕인 죠지 6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남편인 필립 공과 함께 케냐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갑작스런 부왕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급거 귀국길에 올라서 런던 땅에 도착할 때는 공주의 신분이 아니라 군주의 위치로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정치인으로 추앙을 받은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깍듯한 예우를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역대 최장수 군주인 빅토리아 여왕의 61년 기록을 경신하기 바로 목전에 와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재 83세인 엘리자베스는 100세 이상 건재할 것으로 예측한다. 비록 부왕은 장수하지 못했지만 모친이었던 왕비는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100세를 넘어서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일이 있을 정도로 유전적 요인에서도 장수할 것으로 보고 있고 무엇보다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첫 번째 아들이자 서열 1위인 찰스 황태자가 이미 61세에 접어들어서 더 늙기 전에 왕권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여론의 압력을 받고 있으며, 또 다른 여론은 손자인 윌리엄에게 바로 왕권이 갈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재 영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국가원수의 위치와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세계 평화와 질서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현주소를 생각해 보면 그녀의 부왕이었던 죠지 6세가 1936년 12월 10일에 바로 전임이었던 에드워드 8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미국 출신의 두 번에 걸친 이혼녀인 심프슨과의 사랑을 선택해 마지못한 상태에서 왕권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보다 더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을까 싶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절세 미녀도 아니고 이혼녀와의 사랑을 좇아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 궁궐에서의 생활을 포기한 에드워드 8세나, 그의 후대 왕인 동생 죠지 6세의 말더듬 현상과 수줍어하는 성격에도 어렵게 왕권을 계승한 모습에서 인간적 고뇌의 진수를 발견해 본다. 죠지 6세는 재위 중 격동기였던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영국민과 더불어 슬기롭게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당시에 공주로서 국가적 위기에 부왕의 인내심과 지도력을 자연스럽게 체화한 바탕 속에서 오늘의 영국을 이끌고 있다.
엘리자베스나 선대 왕인 죠지 6세 모두 영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인류 평화에 이바지할 위대한 지도력을 보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숭고한 보훈정신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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