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영 대전어은중학교 교감 |
이에 김씨는 고아나 다름없는 자기를 거둬준 주인의 은공을 생각하면서 밤늦게까지 정성껏 100여 발을 꼬아 한사리를 지어 놓고 잤는데, 박씨는 내일 아침이면 지긋지긋한 머슴살이를 벗고 떠날 건데 새끼는 무슨 새끼냐며 몇 발 꼬는 시늉만하다가 초저녁부터 그냥 자 버렸다.
이튿날 주인은 두 사람에게 푸짐하게 차린 아침을 대접한 후 10년 동안의 새경(머슴에게 주는 품삯)을 계산해 주고는 간밤에 부탁했던 가는 새끼를 가져와 보라고 했다. 두 사람이 각자가 꼰 가는 새끼를 가져오자 주인은 준비한 돈궤를 열고 자네들이 꼰 새끼에 돈(엽전)을 꿸 만큼 꿰어 가지고 가라고 했다.
김씨는 지게에 지고 갈 만큼 많은 돈을 꿰어 가지고 이웃마을에 가서 넓은 농토를 샀고, 박씨는 겨우 두어 발 꿰어 가지고 가다가 화가 나서 주막에 들러 술로 탕진하고는 도로 그 집의 머슴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너희는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김씨 같은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시고는 우리들을 교문 앞까지 배웅해 주셨다. 그날 이후로 내 좌우명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였고 오늘의 나로 성장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77년 2월, 순성초등학교 제 42회 졸업식 날 나는 6학년 4반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이순희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앞의 그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나 또한 끝까지 최선을 다한 김씨 같은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면서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다시 세월이 흘러 10년 뒤, 6학년 4반이었던 아이들이 반창회를 한다고 초대해서 갔더니, 장난기가 많았던 조성민 군이 달려와 물기어린 눈빛으로 내 손을 꼭 잡더니만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큰절을 했다. 얼떨결에 절을 받고는 까닭을 물었더니,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하고 외삼촌의 소개로 카센터에 취직을 하여 정비 기술을 배웠단다.
그런데 심한 경우 주인에게 망치로 얻어맞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졸업식 날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옛날이야기 속의 김씨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라.’는 그 말씀 한마디 때문이었다는 게 아닌가. 또한 그 동안 피나는 주경야독으로 자동차 정비 기사 자격을 획득하여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대학을 나온 저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날 조군과 몇몇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어머니께서 담그신 탁주를 함께 마시며, 정말로 즐겁게 취해 웃고 떠들고 연신 흐뭇해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요즘이 졸업 시즌이기 때문이리라.
이제 정들었던 모교를 뒤로 한 채 상급학교로 또는 직장으로 새 삶을 찾아 떠나는 오늘의 졸업생들에게 우리 선생님들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그 말씀 한마디는 학생들의 가슴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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