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마누라와 빈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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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마누라와 빈대떡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2-06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구 소련 치하의 인민은 일한 척만 하고, 정부는 배급을 주는 척만 했다. 진정한 주인이 없는 시스템이기에 그들은 몰락했다. 그렇듯이 주인의식 없는 집은 콩가루집안이다. 그 중심의 마누라. 마누라는 집안에 뜨는 해 같은 존재다. 아내(안해)는 ‘안’과 ‘해’가 결합한 낱말이다.


경상도 변강쇠가 옹녀에게 묻는다. “니, 마누라의 어원 아나?” “어원?” 모처럼 질문다운 질문에 옹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변강쇠가 게걸스럽게 웃으며 말한다. “마∼ 누우라!” 썰렁한 어원 풀이는 당연히 유머다.

‘마누라’는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이른다는 사전 풀이처럼, 좋게 부르면 좋은 말이다. 진짜 어원을 따져보면 마누라(마노라)는 ‘대비 마노라’, ‘선왕 마노라’에서 보듯이 하늘같은 존재에게나 붙였다. 왕이나 왕비급 호칭을 지금 대한민국 남자들이 아내에게 붙이고 있는 것이다. 정3품 이상 종2품 이하의 관원인 ‘영감’과는 게임이 안 되는 호칭이다.

각설하고, 시청률 조사회사 AGB닐슨 분석을 빌리면 1월 기준으로 초저녁 6∼8시 귀가해 TV 보는 사람이 늘었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에 이어 막 나가는 ‘막드’가 대세다. 몸값 비싼 톱스타 없이 극을 끌자면 자극적 방법론이 불가피하겠지만 어쨌든 호주머니가 얇아져 일찍 귀가한 영감, 마누라가 어우러져 욕하며 막장 드라마를 본다. <아내의 유혹> 시청률 40% 기록도 어느 정도는 영감들이 기여한 덕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마누라와 연속극 보자는 말이 유행하게 생겼다.

그러나 리모컨 없이도 볼 수 있는 마누라. 어떤 회사는 가족보다 거래처를 더 자주 찾으라고 야박하게 굴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살벌한 신경영이 우리 사회를 풍미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봉급날이 와도 ‘요리’는 없고 ‘반찬’만 내놓는 살뜰한 마누라. 막장 드라마에서처럼 함부로 갈아치울 수도 없는 사람, 간혹 술 먹고 문짝을 발로 차더라도 흉 될까봐 제일 먼저 맨발로 달려나오는 이름. 마누라.

마누라의 사회적 측면은 아줌마다. 생쥐가 옆집 아줌마에게 당할 확률이 고양이에게 당할 확률보다 높다. 제 새끼 잘 키우려면 공간도 넓고 먹이가 풍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다. 그러나 그 너머에 이타적인 유전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우리 아줌마이며 우리들 마누라다.

마누라는 이기적인 듯 합리적이다. 이웃집 아줌마는 끽해야 김치 몇 포기 생색내며 먹여주지만 마누라는 몇만 번이라도 밥상을 차려준다. 익살과 해악이 담긴 만요(漫謠) <빈대떡 신사>에 ‘돈 없으면 집에 가서(‘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대목이 있다. 빈대떡도 녹두 반죽을 덮고 잣을 박는 전통 빈대떡은 돈 없이는 어림도 없다. 대충 부치는 빈대떡도 마누라 없이는 결코 만만한 음식이 아니다.

시중 유머를 동원하면, 애인이 50대에 있으면 가문의 영광, 60대에 있으면 조상의 은덕, 70대에 있으면 신의 은총이다. 애인과 달리 마누라의 진가는 불황 때 발한다. 그런 마누라에게 구조조정 안 당하려면 동업자 정신을 발휘하라. 배우자보다 친하다는 ‘오피스 와이프’(사무실 부인)에게 들이는 정성의 반만 마누라에게 투자하라. 서비스의 차원이 달라진다. 빈대떡 맛이 달라진다. 그리고 애인이 빈대떡 부쳐주는 것 보았는가.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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