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푸른 강물에 저리로 수루(水樓)가 보임직한 작은 섬을 끼고 어선이 왕래하며 돛 주고 노 젖는 소리에 강기슭에서는 표모(漂母)들의 방망이 소리도 구성지게 들려오는 태고적(太古寂)한 시간의 강, 그것은 저녁놀이 하늘도 땅도 물도 일체 되게 물들인 새빨갛게 화염같이 미묘하게 도색된 황혼의 강 풍경에서 나는 항상 나의 인생과 예술과 자연에의 정열로 가득하다. (이응노, “내가 좋아하는 풍경”)
고암의 산수풍경전이 오는 27일부터 대전이응노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올해 이응노미술관의 첫 기획전시인 이번 전시회에는 박인경 명예관장으로부터 받은 3차 기증작품 중 2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1970~1980년대에 제작된 산수풍경 작품으로 이응노 산수풍경의 정점에 선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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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관심이 자연세계, 자연에서의 삶에 놓여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그의 추상작품 대부분은 자연풍경과 인간, 동물이 소재가 된 것으로 이것은 그의 추상의 출발이 자연과의 단절이기보다는 자연으로부터의 추상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이응노의 회화는 자연본질의 사생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산수풍경화는 그의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떠한 은유 없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장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응노라는 작가의 본질에 최대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작가 인생 전체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가는 고암만의 산수풍경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1970~1980년대 산수풍경, ‘하나의 소우주’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제작된 것들로 이응노 산수풍경의 정점에 선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서화가로 시작한 이응노는 자신의 뿌리를 동양화에 두었으나 이에 안주하기 보다는 변화를 지향했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린 자세로 수용했다.
동양미술의 정신적인 가치 안에서 그는 당시 서구와 동양에 나타났던 서체회화 및 서구의 서정적,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특징을 흡수해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 한끝에 고암의 산수풍경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 산수화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후대의 현대적인 조형세계와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갈구했다.
마침내 그만의 풍경그림이라는 하나의 소우주를 창조해 낸 것이다.
프랑스 체류시절에 그려진 작품이지만 한국의 산새와 물, 나무 등의 형상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 작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독창성, 실험적 노력의 산물
이번 전시는 2개관에 나누어 구성함에 있어 그 기준을, 획의 ‘확장’과 ‘심화’로 구분된다.
서화로서 습득된 ‘획’이 지닌 가능성이 작가의 실험을 통해 확장됨에 따라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응노 풍경그림의 추상성의 심화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각 전시관에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의 풍경화를 배치, 이응노의 작품과 비교 관람도 가능할 전망이어서 이응노 산수 풍경화의 독창성을 강조하고 동시에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곽영진 이응노 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문자추상이나 군상 등과 같은 작가의 대표작들에 대한 연구와 전시가 다각적으로 이뤄져왔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했던 이응노 만의‘산수와 풍경’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고암화풍의 동·서양의 수용에 대한 이해를 돕고 어느 한 곳에 귀속되지 않은 독창적인 그의 화풍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구성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가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학술적으로 작가의 예술 세계가 다양하게 연구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영록 기자 idolnamba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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