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10시께 동구 산내동의 한 버스정류장. 2~3명의 주부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였다.
얼마 뒤 도착한 버스에서 가방을 멘 학생들이 내리자 기다리고 있던 주부들은 “무서울까 봐 엄마가 나왔어.”라는 말을 건네고 나서 자녀를 데리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부 A씨(45)는 “강호순이 저지른 범행 중 4건이 버스정류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학원에 다녀오는 딸을 마중 나왔다”며 “특히 심야시간 대이고 주변에 CCTV도 없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더하다”고 마중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B씨(43ㆍ여)는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뒀는데 내일부터는 아예 학교와 학원으로 자가용을 이용해 딸을 데려다 주고 데려올 생각이다”며 “딸도 딸이지만 나조차도 고급 승용차를 탄 낯선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 땐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며 불안한 마음을 내비쳤다.
최근 강씨가 범행 대상을 물색한 각 버스정류장에는 자녀를 마중 나온 시민들이 부쩍 늘어났다.
각급 학교 근처에도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대에 자녀를 안전하게 ‘모시기 위한’ 부모들의 승용차가 빼곡히 진을 치는 등 일상 생활 속에 강호순 여파가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직장 여성들의 생활방식도 바뀌었다. C씨(34)는 “예전에는 직장회식이 있으면 심야까지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강호순 사건 이후 1차만 참석한 뒤 동료한테 양해를 구하고 이른 시간에 귀가 한다”며 “그래도 불안해 남자친구에게 연락해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할 때가 잦다”고 말했다.
노래방 도우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이다. 강호순이 살해한 7명 가운데 3명이 노래방에서 만난 도우미였기 때문이다.
노래방 도우미 D씨(37)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요즘에는 도우미를 찾는다는 연락이 와도 나가기가 꺼림칙할 때가 많다”며 “내가 아는 사람들도 동료도 강호순 사건 이후 부쩍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여성들이 휴대하는 호신용 상품 판매는 부쩍 는 것도 눈에 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 등에 따르면 강호순 검거 이후 일 주일가량 동안 전자충격기, 경보기, 호루라기 등 호신용품 판매가 전 주에 하루평균 60%나 판매량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대 심리학과 김지환 교수는 최근 이는 시민공포에 대해 “강호순 사건이 워낙 쇼핑한 사건이고 과거에도 종종 일어나다 보니까 시민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유사 사건이 나한테도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잠재돼 나타난 현상으로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강제일 기자 kangj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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