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율로 연합피부비뇨기과 원장 |
비록 순간의 자그마한 일들이긴 하지만 어머니의 본능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 각색 되어 내 머리 속에 각인되어진 것이다. 사랑이 개입된 오징어나 사탕은 더럽지도 않고 오히려 더해진 사랑만큼이나 맛이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혼이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황혼의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누구라도 한때는 조금이라도 떨어지게 된다면 사느니 죽느니 했을 것 이다. 그러나 서로의 문제에 봉착하고 나서는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모습에서 책임감은 둘째 치고라도 옛적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냉 서리만 감도는 것이다.
황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먹고살기가 바빴든지 자식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였든지,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도 이제는 따로 지내는 것이 편하고, 남은 인생이나마 보람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일 것이다. 어떤 이는 헌신짝도 안타까워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부부간에 사랑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어려움이 있든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랑이 빠져나간 관계에 있어서는 종이 한 장을 가지고서도 싸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입양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입양을 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는 없다. 이분들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어떤 것일까?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보니 외국인들은 정상적인 아이보다는 오히려 문제가 있어 더욱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반대라고 하지만 말이다. 어떻든, 이 또한 다른 형태의 헌신적인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의 감정이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이성간의 사랑인 에로스(Eros), 가족이나 종족 간의 사랑인 스토르게(Storge), 친구간의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필리아(philia), 가깝지 않은 이방인들에 대한 동정이나 배려인 크세니아(Xenia) 그리고 자기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인 아가페(Agape)가 그것이다. 잘 따져보면 이러한 사랑의 종류들이 이해되기는 한다. 개인이나 종족, 사회와 국가를 올바로 세우고 유지해나가는 데 있어서 돈, 명예, 학문등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형태이든지간에 이러한 사랑이 그의 원동력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사랑은 연인이나, 친구, 가족 등의 사랑에서 분명하게 구별되기보다는 여러 형태의 사랑들이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부부간에도 처음엔 에로스나 필리아로 시작되겠지만 때로는 스토르게나 아가페의 형태로도 나타나게 된다. 어느 형태의 사랑이 고급적이고 건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랑이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한 그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는 따뜻할 것이며 희망적일 것이다. 사랑은 이기적이기보다는 이타적이다.
자신을 생각하기에 앞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어찌 원망이나 질시, 다툼이나 해함이 앞서겠는가? 새해가 밝았다. 우리 곁에 사랑이라는 접착제가 항상 붙어 있어 비록 경제가 어려울지라도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고 같이 살아가는 행복한 우리나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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