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코끼리 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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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코끼리 걸음으로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1-29 21면
  • 최충식 논선위원최충식 논선위원
따분해진 개미 형제가 코끼리 사냥에 나섰다. 집채만 한 코끼리가 바나나를 따먹고 있었다. 동생 개미는 코끼리 오른 무릎 위에, 형 개미는 목젖 부근에 진을 쳤다. 동생 개미가 말했다. “내가 코끼리 다리를 걸 테니까 형은 목을 졸라!” 며칠 뒤 코끼리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는 옛날 이야기.


들은 지 하도 오래돼 어떻게 코끼리가 죽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이 입원해 설 연휴 3박4일을 꼬박 병원에서 지내고 딱 2시간의 여유시간에 뿌리공원을 산책하다 떠오른 이야기 한 토막이다. 오랜만에 십이지신상을 보니 옥황상제가 약간 노기 띤 얼굴을 하고 있다.

옛날에 할머니는 이런 이야기도 해주셨다. 상제가 정월 초하룻날 동물들에게 선착순을 시켜 12지로 삼았다. 우직한 소가 1등 했는데 소 머리 위에 쥐가 타고 있었다. 그래서 자축인묘(子丑寅卯) 순이며 용(辰)은 다섯 번째라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활동하는 동물을 표시했다는 등의 몇몇 설이 있다. 유시는 닭이 둥지에 들어가고 술시는 개가 집 지키기 시작한다는 식이다. 또 자시는 쥐가 막 쏘다니는 시간, 축시는 소가 되새김질하여 밭갈이를 준비할 시간이다.

일본에 가면 해(亥)가 맷돼지가 되고 베트남에 가면 축(丑)은 물소가 되기도 한다. 확인은 못했는데 어떤 곳에는 개미띠가 있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돼지를 빼고 코끼리띠를 쓰기도 한다. 어쨌든 지금 상징으로 삼고 싶은 동물이 코끼리다. 코끼리의 분당 심장 박동은 30여 회인 반면 쥐는 600번이나 뛴다. 심장 박동 5억번을 기준으로 동물은 생리적 시간에서는 몸집이 크든 작든 비슷한 수명을 누린다.

쥐는 코끼리보다 더 빠른 템포의 삶을 산다. 10g 생쥐의 하루는 100톤 고래의 2개월과 맞먹는다. 포유류의 시간은 체중의 4분의 1승에 비례한다는 가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삶이 코끼리를 닮았냐, 쥐를 닮았느냐일 것이다. 아니, 우리가 삶과 죽음이라는 두 마리 코끼리 사이에 놓여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해 ‘코끼리를 쇼핑백에 담는 19가지 방법’을 따라 하다 깨끗이 포기했다. 마음속 코끼리의 주인이 되는 편이 빠르겠다고 판단했다. 차라리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편이 빠르겠다 싶어 이영도를 응용한 방법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코끼리 엉덩이뼈 아래쪽 11㎝ 되는 쪽을 붙잡고 장정 172명이 28분간 냉장고에 쑤셔넣는다(해적선장). 7일 밤낮 코끼리 옆에 붙어 냉장고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린타). 코끼리 크기의 함정을 파서 코끼리가 빠지면 그걸 냉장고라고 한다(미레일).

바늘 하나로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이 있다. 첫째, 코끼리가 죽을 때까지 바늘로 찌른다. 성실함이 필요하다. 둘째, 코끼리를 바늘로 찔러 죽을 때를 기다린다. 인내가 필요하다. 셋째, 코끼리가 죽기 직전에 바늘로 찌른다. 고도의 타이밍이 필요하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보고 소처럼 신중하라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을 바꿔 판단을 소처럼 느리고 행동을 호랑이처럼 한 결과, 지난해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시야와 보폭을 바꿔 호랑이처럼 판단하고 코끼리처럼 신중하겠다고, 쥐새끼처럼 움츠러든 마음속 코끼리부터 다스리겠다고 다짐해본다. 미쳐서 날뛸 때나 급할 때 외에는 잘 뛰지 않는 코끼리. 이제부터 ‘코끼리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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