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 교수 |
통신사를 바꾸기로 작정한 내게 친절한 영업사원이 충고를 한다. 지금까지 이용했던 통신사에 해지를 요청 하면 가격 할인 등 다양한 서비스를 해줄테니 그대로 이용하라고 하겠지만 결국 자기네 회사로 바꾸는 게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순간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비스를 해줄 양이면 오랜 고객에게도 미리 통보를 해주어서 좋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지 왜 마음을 바꾸는 순간에야 제안하는가? 그게 ‘이 시대의 상술’이라며 친절한 영업사원이 또 한번 나를 달랜다. 아마 장사이니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속셈이라는 의미 같았다.
생산-소비의 구도에서 일편단심 사랑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배신을 당한 것 같기도 하고 미련하게 당하고 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곧 웃고 말았다. 내 기준에서 볼 때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 오래된 고객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때마다 변심하는 고객들이 더 소중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오래된 것은 버리고 다시 구매해야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을 테니 이 시대, 변심을 미덕이라고 보아야 하려나. 아무리 그래도 몇 년을 한 제품을 사용해 온 소비자의 마음을 몰라주는 얄팍한 상술에 지극히 불쾌했다.
영리해서 자기 잇속에 맞게 행동하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 잘 사는 초고속 시대의 세상살이, 우는 아이 젖 준다는 속담처럼 무슨 일에 있어서나 자기가 요구하고 그래야나 얻을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울어야만 젖을 먹는 아이는 어느 새 젖을 먹기 위해 우는 행동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변수에 의해 우는 행동은 점점 더 필사적으로 악착스럽게 변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만큼 시끄럽고 처절한 광경이 떠오른다. 잠시도 끈을 늦추지 않은 채 신경을 곤두세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그때마다 내게 이로운 행동을 결정하며 마음을 바꾸고 다시 또 머리를 짜내는 식의 생활. 천성적으로 이런 패턴에 조금 더 잘 맞는 사람부터 휘말리기 시작하여 나만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뒤늦은 사람까지도 영향을 받는 채, 약삭빠름의 회오리는 점점 더 커지면서 우리를 휩쓸고 있다. 뭐하느라고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며 정신없이 휘돌고 있다. 목적을 가지고, 구조를 갖추어서 바쁘게 움직이면 그것은 삶의 에너지가 되버렸다.
초고속 시대를 가져온 과학기술도, 세계를 하나로 엮는 정보화도, 기상천외한 상술도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노력이어야 한다. 초고속 변화의 회오리 속에서 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도 결국 인간을 믿는 사랑이다. 그런데 사랑에도 ‘살리는 사랑’이 있고 ‘죽이는 사랑’도 있으니 잘 선택해야 한다.
죽이는 사랑은 절제를 잃어버린 사랑이다. 죽이는 사랑은 한 쪽으로 쏠린 사랑이다. 죽이는 사랑은 믿지 못하는 사랑이다. 죽이는 사랑은 차별하는 사랑이다. 조화와 균형으로 살리는 사랑을 하자.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사랑을 하자. 이미 우리는 어린 아기일 때 배웠다. ‘도리도리, 짝짜꿍’, 이쪽저쪽 보고 도리를 지켜 살라는 소망을 선조들은 아기를 어르는 노래에 담았다.
새해, 시작되자마자 내리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 이쪽 사람도 보고 도리, 저쪽 사람도 보고 도리, 조화로운 짝짜꿍 손뼉을 치자. 인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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